‘골목에 외국인이 사라졌다!’
무슨 말인가? 서울의 한 복판. 명동거리를 오랜만에 들렀던 나의 소회이다. 을지로입구 근처에서 지인과 점심을 한 후 산책 삼아 명동 메인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평일이지만 오후 한참 시각인데 한산하다 못해 썰렁하다. 명실공히 이 거리는 대한민국 관광 1번지이자 외국인 관광객의 최고 핫플레이스였지만 이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덩달아 내국인의 방문수도 대폭 줄었다. 최고 상권을 자랑하던 화려하고 값비싼 상가, 점포들이 텅 비어있다. ‘아~ 정말 심각하구나!’ 탄식이 나온다.
그날 저녁 뉴스 멘트 – 참, 우연의 일치인지
”오늘 기자는 명동에 나와 있습니다. 서울 최대 상권으로 꼽히는 명동. 점심시간인데도 거리가 썰렁합니다. 골목 이쪽 라인에만 빈 점포가 3개 이상 붙어있고 줄줄이 다 폐업한 곳입니다. 문을 연 곳보다 닫은 곳이 더 많은 상황입니다. 상점 곳곳에 임대 안내문이 붙었고 기약 없는 휴업에 나선 곳도 많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이곳을 잠시 지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던 화장품 가게 '호객 도우미'들도 사리지고 '개문영업', 즉 여름철 에어컨을 켠 채 가게 문을 연 곳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개문영업 호객행위를 단속하는 공무원들도 물론 볼 수 없습니다. “
내가 오늘 낮에 목격한 광경이 그대로 취재기자의 낭랑한 멘트로 이어졌다.
”공실률이 계속 치솟으면서, 명동 상권의 올 2분기 공실률은 약 43%를 기록했습니다. 10곳 중 4곳이 넘는 상가가 문을 닫았다는 뜻이고 서울 지역 최고로 높은 수치입니다”
골목 아재인 나도 이 거리에 대한 추억과 애환이 많다. 청춘시절엔 미팅과 데이트 장소의 대명사요, 대학가 민주화 투쟁이 정점인 시절. 상징적 장소였던 명동성당, 골목골목에 레전드 맛집들이 즐비해 주말마다 즐겨찾기, 다양한 옷가게, 액세서리 점포, 유행을 선도하는 특색 있는 점포들. 인근 백화점, 남대문 시장을 묶어 엄청난 문화 파워를 자랑했다.
뿔테 안경에 수수한 옷차림으로 친구와 함께 주말 명동에 놀러 갔다가 시위 단속에 곧장 ‘닭장차’로 연행되어 유치장에 콩밥(?)을 먹으며 꼬박 1박 2일을 허공에 날린 어설픈 옛 추억도 있다.
“이 거리가 언제쯤에야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까. 세계 각국의 이방인들이 이곳을 가득 채우며 웃음 짓고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는 그날이 오면. 훗 후 나도 마냥 기쁘겠지! “
2019년 외국인 관광객이 1,750만 명인데 작년 2020년에는 252만, 전년대비 마이너스 85.6%에 그쳤다. 2019년 체류 상주 외국인이 252만 명인데 2021년 초엔 202만 명으로 대폭 줄었다. “물 건너 올 사람 못 오고, 있는 사람도 안 온다!” 이 거리가 썰렁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생기 잃은 국제 다문화거리. 이태원에도 외국인이 사라졌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방인의 대표 거리로 일컬어지는 곳은 이태원 지역이다. 이 거리 역시 경리단길과 함께 서울의 간판 글로벌 문화거리로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떠난 영향으로 타격도 받았지만 ‘이태원’ 자체의 명성과 브랜드에 힘입어 이후에도 최고 핫플레이스 타이틀을 유지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즐겨 찾고 독특한 이국적 문화와 함께 ‘경리단길’이 뜨고 세계 각국의 음식점이 들어서 음식 문화 특화거리로 유명했던 곳이다. 전국 ‘~ 리 단길’ 열풍을 주도한 이태원과 경리단길. 이곳 또한 소리 없이 사그라드는 풍전등화 촛불과도 같은 상황이다.
나도 대학시절 이태원에서 1~2년간 자취생활을 하였기에 이곳 골목골목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다. 이태원 소방서부터 언덕길 우사단 골목을 넘어 한남동 달동네까지, 한강진역, 블루스퀘어부터 이태원 전철역, 녹사평역 중앙로와 뒷골목에 이르는 동선은 정감 어린 옛 동네로 기억한다.
이태원에는 이슬람 거리와 아프리카 거리, 나이지리아 거리가 있다. 모두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인근에 위치한다. 우사단길이라 불리는 이슬람 거리는 1976년 세워진 한국 최초의 이슬람 중앙서원을 중심으로 할랄 음식 전문 마켓과 터키, 파키스탄, 이란 식당 등이 있고 히잡을 판매하는 옷가게, 이슬람 전문서점들이 차례로 자리 잡으며 특화거리가 형성되었다. 타번. 히잡을 두른 무슬림과 다양한 아랍어 간판이 즐비해 이곳의 분위기를 실감케 한다.
이슬람은 우리에겐 ‘테러’, ‘전쟁’등 부정적인 이미지도 존재하지만 쌍화점, 처용무 등 우리 옛 고대가요에도 등장하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물을 전해준 고마운 먼 이웃이다. 70년대, 건설업으로 상징되는 ‘사막의 신화’를 제공해 준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K-POP 열풍에 히잡 쓴 아랍 소녀들이 우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다. 우연히 길에서 무슬림을 마주치면 반갑게 한마디 인사 어떨까?
‘살람 알레이쿰!’ (‘안녕하세요!’)
이쯤 들어 또 생각하고 궁금해진다. ‘코리아 드림’의 꿈을 안고 대한민국을 찾은 많은 이방인들이 이 땅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당당한 이 땅의 일원으로서 말이다. 과연 그들의 입장에서 낯선 이국 땅. 이방인의로서의 삶은 어떨까?
우리 한국의 경제력, 국가 위상 증대와 맞물려 많은 외국인들이 다양한 목표, 기대, 꿈을 안고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다. 서울 곳곳에는 자연, 자발적으로 생긴 외국인 특화지역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곳을 꼽자면 대림동 중국 거리, 연희동 차이나타운, 가리봉동 연변 타운, 자양동 양꼬치 거리, 동부이촌동 일본인 마을, 반포 프랑스 서래마을. 혜화동 필리핀 거리, 창신동 네팔인 거리, 동대문 중앙아시아 거리, 러시아 거리, 광희동 몽고 타운, 한남동 독일 커뮤니티... 그렇고 보니 이미 서울은 국제도시, 다문화 도시임이 분명하다.
지금은 잠정 중단됐지만 매년 5월쯤이면 서울광장, 청계광장 주변 도로, 골목에서 대규모 지구촌 문화행사, 세계도시문화축제가 열려 전 세계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즐긴다. 글로벌 국제도시. 서울의 최고 축제로서 내년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열렸으면 한다.
세계 각국의 음식을 고루 맛 볼 즐거움을 허(許)하라 ~
중국 교포에 대한 편견은 이제 그만!
중국 교포와 관련한 범죄 조직을 소재로 만든 액션 영화 두 작품이 몇 해 전 개봉해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강력계 형사 역. 마동석 주연으로 대박을 친 ‘범죄도시’와 박서준, 강하늘이 경찰대 출신으로 연기한 ‘청년 경찰’이다. 영화 제목만 딱 봐도 범죄, 조직 깡패, 형사가 등장하는 한국영화의 흔한 액션 영화인데 이들 영화는 개봉 전후로 시끌벅적한 사회 이슈가 되었었다.
영화 속 배경이 된 곳은 대림동 차이나타운과 가리봉동 일대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족 폭력배들이 활동하는 범죄 구역이 이곳 대림동 일대로 신랄하게 그려지면서 지역상인과 주민이 영화 개봉 반대를 외치며 들고 일어섰다. 과거 일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현재는 중국 전문 특화 거리와 맛집, 다양한 상점과 가게들이 들어서며 서울 속 차이나타운으로 소문난 명소가 된 지역인데 흉악한 범죄 집단이 활보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영화 제작진이 공개 사과하고 설득하여 예정대로 상영되었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다행히 대림동 일대 차이나타운은 입소문을 타고 더욱 발전하고 있다. 현재 대림동 일대 중국 특화거리는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고 이미지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상주인구 87.5%가 외국인,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안산시 원곡동 지역은 국내 최대의 다문화지역이다.
원곡동 다문화거리는 그야말로 동네 전체가 외국인이 거주하는 마을이라 할 수 있다. 2009년부터 안산시가 조성한 다국적-다문화 마을인데 전체 주민중 80~90%에 이르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상주하는 곳이다.
‘세계 음식 종합 선물세트’라 불릴 정도로 이 지역도 200여 곳의 외국 음식점과 다양한 세계 국가 물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들어서 연간 4~5백만 명이 찾는 안산의 대표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전국 유일의 다문화 특구답게 중국, 러시아, 몽골, 태국, 베트남, 네팔, 인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 서로 부대끼고 교류하며 안산, 시흥 등 주변 공단에 주로 일자리를 찾아온 이들이기에 원곡동은 그들의 소중한 삶의 안식처이자 미래를 위한 보금자리 동네이다.
사람이 오는데 문화가 따라옴은 당연하다. 다양한 세계 문화가 유입되어 한국 속에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소득, 경제 수준을 떠나 이제 체류 외국인도 대한민국의 한 일원이기에 국내 곳곳의 외국인 거주지와 문화 특화거리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살기 좋고 편안한 곳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웰 메이드(Well-made) 외국인 특화거리는 우리 경제, 문화, 관광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올 사람 안 오고 있을 사람 떠나고, 이방인은 우리의 일원이자 이웃 따듯하게 맞아들이고 다정하게 대해주자. 우리 한국도 세계의 리더국가 국민 아니던가?
외국인 이민자를 주제로 한 훈훈한 영화들이 기억이 난다. 박완서 원작, 필리핀 어머니와 조우하며 따듯한 가족의 정을 그리는 ‘완득이’, 의자 공장 다국적 이민자들과 우정을 나누는 ‘방가? 방가?’, 최근엔 ‘오징어 게임’에서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도 주역으로 출연해 관심을 끌었다. 조만간 인기 예능프로에도 캐스팅되었다니 축하할 일이다.
다시 우리 거리에 외국인 친구들이 찾아오면 더없이 따듯하게 맞아주자.
■ 황홀한 골목을 위.하.여 -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