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여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언텍트 투어, 비대면 투어, 랜선 투어, 마이크로 투어. 무착륙 항공투어. 가상현실 투어...
모두 다 코로나 이후 새로 생긴 신조어들이다. 이젠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들어 꽤나 익숙해졌다. 앞으로 이보다 진화된 단어가 생길 줄도 모른다.
긴긴 팬데믹의 암흑 터널로 인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다. 방콕, 집콕도 하루 이틀이지 길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저마다 위안처를 찾고 있다. 가끔이야 맘먹고 동해안, 제주도라도, 하다못해 가까운 산과 들로라도 다녀온다지만 이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골목 아재인 나도 트레킹이나 골목 걷기로 겨우 심사를 달래고 있지 않은가?
해외여행이 힘들어진 세상, 얼마나 떠나고 싶었으면 ‘무착륙 항공여행’, ‘무착륙 유람비행’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초유의 상품이 나왔을까? 길어봐야 고작 두어 시간 상공을 나르다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무착륙 항공투어 티켓이 세계 각국에서 출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우리도 김포공항을 출발 제주도 상공을 빙 돌아오거나 좀 더 날아가 오사카 상공을 영유하다 되돌아오는 상품이 나왔고 대만에서 출발해 제주도를 돌아 다시 되돌아가는 타이뼤이 항공사 프로그램도 완판이 되었다고 한다.
몸만 그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있지만 그래도 창밖 하늘과 아래로 보이는 뭉개 뭉개 구름을 보며 “내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를 날고 있구나~“ 하고 자기만족을 한 뒤 그 뒤에 나오는 간단한 기내식 서비스를 받으며 미각으로 위로받고, 마지막 정점에 면세점 쇼핑으로 그간 눌려왔던 스트레스를 풀어 재낀다 ~.
대략 이런 걸 텐데.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 정도 ‘무착륙 항공여행’으로 위안이 될까? 무착륙이라 해도 가격은 원래 상품과 비교해서 결코 만만치 않다. 항공료의 대부분이 공항이용료, 항공유류비, 승무원 인건비, 기내 서비스 등이니 실제 여행보다 쌀 이유가 하등 없다.
일본의 한 호텔 레스토랑은 아예 내부 인테리어 자체를 비행기 실내처럼 완벽히 재현하고 실제 항공 서비스와 똑같은 기내식 서비스와 가상현실 영상을 통해 목적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도록 하는데 이 또한 대박 상품이라는 소식도 일찌감치 들었다.
이 뿐인가? 비대면 해외여행 상품은 또 있다. 오랫동안 해외여행 고객 유치가 어려워 경영난에 허덕이던 일부 여행사와 해외 현지 전문 가이드들이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었는데 ‘랜선 가이드 투어’이다. 90분간 관광지를 영상으로 감상하는 코스인데 가이드가 실제 현장 가이드처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랜선 여행자와 대화도 나누고 질문도 받고 소통하며 나름 꽤나 실제적으로 구현하는데 요금은 인당 1~2만 원이니 그냥 영화 한 편 보는 셈 치고 저렴한 랜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포르투, 런던, 비엔나, 파리, 세비야, 바르셀로나, 이스탄불 등 해외 주요 도시 관광지의 골목골목이나 박물관등을 다니는 워킹투어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고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화상회의 방식을 통해 진행되는데, 상품에 따라 최대 50명까지 동시 참여가 가능하다. 차분한 전문 지식 전달형부터 보다 즐거움에 집중한 예능형까지 가이드 별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홍콩 야경투어부터 스페인 피카소 미술관 투어, 생활미술 드로잉까지 여행지와 테마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내심 궁금도 하지만, 역시 중년 아재의 까탈스러움일까. 이것도 아직 굳이 내키지는 않다. 내가 아닌 남이 대신 가고 그저 ‘눈팅’으로 하는 여행이 만족스러울까 싶다.
군부대에도 팬데믹 확진자가 늘어나 장기간 외출, 휴가가 전면 중지되자 일부 부대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부대 내에 갇혀 반쯤은 수감생활(?) 하는 지친 장병들을 데리고 비대면 버스투어도 나섰다. 모처럼 관내 숙소와 훈련장을 떠나 근거리 지역 명소나 해안도로를 따라 외부 풍경을 ‘아이 케치(eye catch) 하는 돌아오는 것이다. 외부에 정차하지 않고 돌아오는 마치 ’ 무착륙 유람‘코스인데도 오죽 답답했으면,,, 참여 병사들은 대만족이다.
최근 각 지자체마다 해당 지역의 역사, 유적 관광지, 읍내 골목 등을 소재로 한 비대면 투어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비대면 골목투어, 비대면 챌린지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투어 코스와 대략적인 일정을 제시하고 참가자들은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식아다. 프로그램마다 미션(QR코드, 인증샷등)을 수행하면 소정의 기념품도 준다. 자유 도보여행인 셈이다.
어떤 프로그램은 집결지에서 제한적이지만 참여자가 모이면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동반 여행을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지역,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경험하고 공유하면서 더 효과적인 골목여행 감상을 할 수도 있다.
알고 보면 나도 벌써 이십여 년 가까운 랜선 투어 마니아인 셈이다. PC, 모바일이 아닌 전통 방식! TV 여행 프로그램이다. 이미 오랜 기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장수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 걸어서 세계 속으로‘, ’ 세계 테마 기행‘등이 있는데 모두 15년 이상 된 간판 여행 다큐이다. 해외 여행지를 때론 소박하고 담담하게, 오지 여행도 마다하지 않고 취재 여행을 다녀오는데 나는 처음부터 마니아 시청자였다.
본방을 놓치면 재방, 재방마저 놓치면 온라인에서 ’다시 보기‘라도 시청해야 직성이 풀렸다. 도시문화, 관광 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많기에 더욱 열성적이다.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먹방 투어, 예능 투어도 그동안 여럿 있었지만 아재는 역시 아재인가 보다. 좀 가볍게 느껴지고 출연진의 과도한 개인기와 어설픈 대사가 많아 어수선한 편이라 불만이지만 해외여행의 간접 체험을 경험하기에 극구 마다하지는 않는다.
요즘 대부분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해외여행 프로그램들은 잠정 휴업상태이다. 신규 제작이 불가하기에 오래전 방송 편을 다시 재편집해서 ‘스페셜’로 다시 재방하지만 지금 다시 봐도 새록새록하다.
나에게 TV 여행 프로그램은 공짜로 즐길 수 있는 비대면 랜선 투어로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요즘엔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로 세계 각국의 해외여행 다큐도 얼마든지 널려있어 랜선 여행의 테마와 범위는 어머 무시하게 넓다.
요리, 야생, 예술, 건축, 농업, 패션, 전쟁, 역사,...
어렵고 힘든 시기에 떠나는 비대면 여행이 어때서? 편한 거실 소파에, 침대에 편히 눌러앉아 치맥을 곁들이는 랜선 여행은 가성비 중 갑. 최고의 취미생활 아닌가?
■ 황홀한 골목을 위.하.여 -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