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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현 Aug 13. 2021

엄마의 인생 첫 페디큐어

엄마의 소녀스러운 미소를 오래오래 지켜드려야겠다

"엄마 패디큐어 받을래?"


작년 여름, 처음으로 디큐어를 받고 여름이면 틈틈이 매니큐어를 바르는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편하기만 했다. 디큐어를 받으니 한 달 정도는 편하게 샌들을 수 있었고, 이번 연도에도 디큐어를 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엄마와 함께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나의 디큐어를 보고 엄마도 예쁘다 라고 하셨지만, 혹여 발가락이 답답하다거나 불편할 거라고 생각하고 안 한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엄마의 대답은 바로 "YES"였다. 엄마도 디큐어를 하고 싶으셨던 눈치였고, 내가 먼저 디큐어를 하고 엄마는 언니와 함께 디큐어를 하러 다녀오셨다


엄마는 좋아하는 보라색에 펄 파우더를 입혀서 반짝반짝한 발가락으로 여름을 보내고 계신다


오늘 아침,

"엄마 발가락 봐 정말 예쁘지 샌들 신으면 더 예쁘다"


점심 준비를 하고 계시던 엄마는 발가락을 보면서 한없이 소녀스러운 표정을 하고 계셨다.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더라면 진작 더 신경 써드렸어야 했는데, 사실 멋을 부리는 일에 게으른 딸이라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엄마와 나는 멋을 부리는 일에 게으른 사람들이라 오히려 소소한 멋에 함께 감동하는 편이라 다행이다 싶다. 엄마와 나, 조금 게으른 멋쟁이들이구나 싶어서 마음속으로 혼자 웃어 보았다






엄마의 인생 첫 패디큐어 덕분에 엄마의 여름이 빛나고 있다


회사 생활을 하고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삼십 년 이상을 세 딸을 돌보느라 경제적으로 넉넉할 수 없었고 엄마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는 머뭇 거리는 삶을 살고 계셨다


한 번은 생선을 좋아하는 엄마가 갈치조림을 하기 위해서 마트에서 갈치를 살까 하다가 비싸서 그냥 집으로 오셨다고 하신 적이 있다, 딸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더라면 비싸더라도 사서 집에 오셨을 텐데 자신이 혼자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엄마는 최대한 참는 쪽을 택하셨다


엄마가 웃으며 그런 이야기들을 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마트에 들러 갈치를 사 왔고 엄마는 좋아하는 무와 감자를 가득 넣어 갈치조림을 만들어 드셨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즐기며 살 수 있기를 내가 더 부지런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소소한 행복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도록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는 일을 미루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않으려고 하는데 엄마는 참고 또 참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려오는 순간들이 있다


엄마의 소소한 행복을 참는 일이 없도록,

엄마의 소녀 같은 미소를 오래오래 볼 수 있도록 내가 더 잘해야겠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많은걸 잊고 살아왔던 시간들을,

앞으로는 엄마와 딸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엄마의 인생 첫 디큐어가 엄마에게 미소를 선물해 준 만큼,

엄마의 앞으로의 시간들이 행복한 미소로 가득 찰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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