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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현 Sep 22. 2021

할미를 위한 분홍색 꼬까옷

분홍색 꼬까옷을 입은 할미의 미소를 오래오래 보고 싶은 날

"엄마 할머니 선물로 어떤 게 좋을까?"


편도 3시간 정도 거리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네 집에 가는 길은 긴 휴무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여름휴가에도 갈 수 없었고, 추석 연휴에도 부모님의 일정에 맞출 수 없어 시골에 간다 하더라도 혼자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는 추석 명절에 운전을 하고 할머니 집에 간다는 건 혼자 얼마나 운전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좋아, 일단 할머니 선물부터 고르도록 해보자

휴무 하루 전날 일찍 퇴근시켜주신 덕분에 시장에서 할머니 옷을 고를 수 있었다. 옷가게도 명절 전이라 일찍 문을 닫고 계셔서 정말 5분 만에 할머니 옷을 골랐다. 차분한 분홍색에 꽃무늬가 있는 할미의 꼬까옷, 할미의 꼬까옷을 보니 내일 꼭 시골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좋아, 일단 내일 고민해보도록 하자. 할미의 꼬까옷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내 마음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많은 이들의 명절 연휴는 토요일부터 시작이었지만 나는 월요일부터 연휴가 시작되었다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할미의 가을 꼬까옷이 마음에 걸려 대충 짐을 챙겨서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편도 3시간, "좋아! 일단 생각보다 얼마 안 걸리네"라는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커피를 먹고 또 먹고, 그렇게 홀로 운전을 해서 3시간 만에 도착한 시골 할미의 집.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할머니 저 왔어요!"

"아야, 먼길 오느라 고생했구먄. 배고프겠다, 어서 밥 묵어야 제" 


시골에 오면 항상 엄마한테 언제 가냐고 물었던 나. 아마도 시골 생활이 적응이 되지 않아 밖에 있는 화장실부터 모든 게 불편했을 것이다. 여전히 시골 생활은 나에게 불편한 일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조금 어른이 되고 나서야 나의 불편함보다 할미를 생각하는 마음이 커졌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해서 으쓱했다


할미의 시골 음식들이 가득했다


새로 담갔다는 파김치와 배추김치는 꿀맛이다. 할머니가 모든 재료를 준비하시는 맛있는 김치를 먹다 보면 내가 김치 입맛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곤 한다. 오징어와 고추가 들어간 매콤한 전부터 몇 가지의 나물들로 배부른 저녁 식사를 했다. "시골에 오길 정말 잘했다" 3시간 홀로 외롭게 운전해서 왔지만, 이곳에 오면 괜히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렇게 사나운 할머니네 집 복실이도 모르는 사람이 오면 집이 떠나가라 짖기 시작하는데, 일 년에 몇 번 보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 걸 보면 내가 정말 시골집에 왔구나 라는 마음에 다정함이 피어오른다. "복실아 언니가 다음에는 간식을 꼭 사 올게" 라며 쉴 틈 없이 꼬리를 흔드는 복실이에게 인사를 나눈다


할미, 가을 옷 사 왔어요!



할미의 꼬까옷을 건네고 혹여나 사이즈가 작지는 않을까 고민했다. 할머니는 늘 "이런 걸 뭣 헐라고 매번 사온 디야"라는 말과 함께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신다. 분홍 꼬까옷은 원래 할미 옷인 듯 참 잘 어울렸다. 할머니는 잠옷에서 내가 사준 꼬까옷으로 갈아입으셨고, 잠들기 전까지 꼬까옷을 입고 계셨다


그리고 추석 연휴 내내 분홍색 꼬까옷을 챙겨 입으셨다

할머니의 마음에도 든 것 같아 내 마음도 행복해진다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지는 날들이 많다. 엄마가 어렸을 적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보내고 할머니는 쭉 혼자 사형제를 돌보셨다. 늘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이지 못한 게 한이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했던 서러움이 마음속 한편에 가득 남아 있으신가 보다. 손녀들이 집에 오면 배불리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는 할머니는 늘 "아야, 이것도 먹어봐야" 라며 쉴틈 없이 먹을걸 내어주신다


"할머니 저희 배불러요"라고 말씀드려도, 그저 조금만 먹어보라며 부엌에서 하나씩 꺼내 오신다. 예전에는 배부르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일 년에 몇 번 보지 못하는 손녀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의 마음이 더 든든해질 것만 같아 먹을 수 있는 선에서 조금 더 먹고 또 먹는다



할머니, 다음에 또 올게요!

서른이 넘은 손녀도 할머니 눈에는 여전히 애기로 보이는지 용돈을 손에 꼭 쥐어주신다


괜찮다며 도망을 쳐도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시며 올라가는 길에 커피라도 사 먹으라며 용돈을 쥐어주신다. 이제는 할머니가 용돈을 주섬주섬 꺼내려고 준비하실 때면 얼른 짐을 챙겨 도망가기도 하지만, 손녀에게 한 번이라도 용돈을 주고 싶어 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할머니 다음에 또 올게요, 건강히 지내고 계셔요"


할미의 집에서 다시 일상을 위해 돌아가기 위해 시동을 켠다. 혼자 시골에 내려온 손녀가 대견하면서도 할미는 혼자 운전을 해서 가야 하는 손녀가 꽤나 걱정이 되시는지 할머니는 연신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할머니의 걱정이 조금이나마 덜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저 "할머니 저 잘 갈 수 있어요! 조심해서 갈게요" 라며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안심을 시켜드리려 하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를 떠올리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남편을 일찍 보내고, 10년 전 큰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던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눈물을 흘리며 살아오셨을까. 남편을 보내고 일을 하며 다섯 식구가 힘들게 살아야만 했을 테고, 자식들에게 밥 한 끼 제대로 먹이지 못한 서러움에 얼마나 많이 미안하셨을까. 할머니 곁을 지키던 큰아들의 부재에 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할머니가 혼자 살아오며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제 90세를 얼마 남기지 않은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표현이 서툴러서 "할머니 할머니" 하며 이야기를 자주 건네는 달가운 손녀는 아닐지라도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작은 선물을 사갈 수 있는 손녀가 되었으니, 할머니가 그저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시골에 갈 수 있는 날이면 할미의 꼬까옷을 꼭 손에 들고 가야겠다. 늘 손녀에게 용돈을 쥐어주시지만 자신의 옷을 쉽게 사지 않는 할미에게 늘 꼬까옷을 선물하는 손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명절


그저 손녀에게 늘 사랑을 주시는 할미에게

분홍색 꼬까옷을 선물하는 손녀가 되어야겠다


분홍색 꼬까옷을 입고 미소를 짓는 할미를 오래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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