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에서도 연인 사이에서도 서운한 일들이 있을 때면 감정과 조금 멀어진 후에 이야기를 건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감정에 예민한 사람이고, 마음에 고인 감정을 풀지 않으면 마음에 오래도록 고여 결국 썩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기에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불쑥 찾아오는 감정을 마주해야 할 때면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듣는 이 입장에서는 내 감정이 온전히 느껴져 같이 감정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을 잘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나 보다. "또 시작이야?"라는 말이 들려왔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잘 이야기한다는 것,
어쩌면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 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국 또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의 일상에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건넸고 결국 우리의 마음에는 파도가 찾아왔다. 우리는 여러 번의 파도를 지나왔다. 이해받고 싶었던 서운함은 결국 높은 파도가 되어 우리를 흔들었고 우리는 그 파도에 휩쓸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는 당신의 노력들에 상처를 주었고, 당신은 나의 용기에 상처를 주었다.
당신의 감정을 듣고 있을 때도 마음이 아파왔다. 네가 뭔데 나에게 상처를 주냐고 묻는 당신에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조금은 단단해졌다고 믿었던 우리 사이는 여전히 사소한 일들로 흔들린다. 우리의 파도가 지나간 뒤 나는 여전히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일까?
결국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건넨 말 또한 당신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당신이 내게 건넨 말 또한 상처가 되었다. 대화 속에서 중간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던 당신에게 나는 조금 더 감정과 멀어졌을 때 이야기를 할 걸 그랬나 보다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용기를 낸 나를 알아봐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다. 나는 여전히 마음의 시소 위에서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나 보다
나는 가끔 당신에게 물어보곤 했다
표현이 적은 당신의 마음을 도통 알 수 없어서 파도에 흔들릴 때마다 당신에게 질문했던 것 같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을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답해주었던 당신이었다. 그 대답에 마음이 다정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는 날들이 깊어진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부끄럽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울 수 있다. '내가 표현이 원래 부족해서'라는 말로 상대방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기념일이 아닌 날에 작은 선물을 하는 것,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려워서 글로 적어 본다며 손편지를 쓰는 일, 먼저 잠든 당신 생각을 하면서 남겨 놓은 장문의 메시지로 전하는 사랑까지, 용기를 낸다면 방법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저 내가 원래 표현이 부족하다는 핑계 때문에 상대방이 '내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표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어쩌면 마음이 부족한 게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하기 싫으면 할 수 없는 이유들로 무장할 테고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미뤄뒀던 일들에도 용기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