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제발 체육 시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체육 시간은 체육 실습 과목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매일 맞는 시간이었다. 줄넘기와 농구처럼 내가 노력하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는 운동 과목이 있는 반면 워낙 겁이 많은 편이라 앞구르기, 뒷구르기, 물구나무서기, 뜀틀 같은 운동은 겁이 나서 머뭇거리는 날이 많았다
체육 시간은 각 조마다 실습하는 일로 진행되었다. 만약 물구나무를 하는 시간이라면 '일단 시작!'과 동시에 물구나무를 서야 했고, 물구나무를 서지 못하는 학생들은 우르르 선생님 앞으로 달려가 몽둥이로 한 대씩 맞고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기에 나에게 중학교 체육 시간은 '운동의 흥미를 떨어 트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 후에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몽둥이가 사라 졌을 뿐, 체육 시간은 나에게 그저 평균 정도의 점수를 받아도 괜찮은 시간이었다. 물론 타고난 운동 신경도 없었을뿐더러 중학교 때 운동에 대한 반감이 생겨 체육 시간은 그저 시간을 보내는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운동은,
긴 시간을 해야 하는 오래 달리기였다
나름 승부욕은 강한 편이지만 승부욕에도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었다. 체육에는 승부욕이 없었기에 달리기라는 종목은 나에게 그저 걷는 듯 뛰는듯한 시간이었다. 오래 달리기는 늘 하위권에서 5등 안에 들었고, 단거리 달리기도 하늘을 보며 뛰었던 기억만 남는다. "와, 오늘 하늘 진짜 예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뛰는데 체육 과목에서 좋은 성적이 나올 리 없었다
우와! 달리기 진짜 빠르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 남아 잠시 공부를 하던 날이었다
'하하호호' 웃으며 복도를 향해 걸을 때 큰 목소리로 웃었던 탓에 야간 자율 학습을 감독하던 호랑이 선생님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셨다. "너네 누구야! 일로와!"라는 소리에 너무 놀란 나머지 슬리퍼를 신고 운동장을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후 다행이야'라는 마음으로 교실로 돌아와 공부를 하는데 친구가 아까 빠르게 뛰던 사람이 네가 맞냐고 물어왔다. "우와 달리기 진짜 빠르다" 친구도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늘 체육 시간마다 엉금엉금 뛰는 나를 보다가 슬리퍼를 신고 전속력으로 뛰는 나를 보고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아? 나 생각보다 달리기를 잘하는구나'
꽤 오랜 시간 달리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경험이 되었다.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터라 한 명 한 명 실습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 잘하지 못할 바에는 그냥 '운동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바랐던 걸까. 어쩌면 나에게 운동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주며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나 역시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이렇게 극대화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첫 러닝을 시작한 이유
"러닝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같이 뛰어보자!"
다양한 운동을 좋아하는 J는 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늘 이야기했지만 쉽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가장 오래 한 운동은,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시작했던 취미 댄스였다. 처음에는 어설프게나마 따라 하며 안무를 배웠고, 한동안은 어렵게 느껴졌지만 꾸준히 시도하다 보니 어느새 흥미가 생겨 아픈 날에도 약을 먹고 운동을 다녀올 정도였다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불안하고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날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운동 덕분이었다
운동에 재미를 붙일 때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운동 가는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스포츠센터는 문을 닫게 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2년, 운동의 흥미를 느끼기는커녕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운동을 해야 해!'라는 생각들이 가득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운동은 늘 뒷전이 되어 버렸다
퇴근 후 답답한 마음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듯한 느낌과 내가 이렇게 못난 사람인가 라는 느낌에 마음이 흔들렸다. 뛰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J의 말이 떠올라 '일단 한번 뛰어 볼까?'라는 마음에 일단 시도해 보기로 했고 옷을 갈아입고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다. 새로운 노래를 틀고, 러닝 코치의 음성을 들으며 뛰기 시작했다. 다정한 노래와 러닝 코치의 응원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용기를 내어 오늘 러닝을 시작했다는 것
수없이 많은 핑계를 뒤로 하고 일단 시도해 보았다는 것
결국 인생을 살면서 영감은 나로부터 얻게 된다는 것
뛰는 동안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늘 운동이 원하는 속도가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는 '시작!'과 동시에 무언가를 해내야 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몽둥이가 나를 찾아왔다. '빨리빨리'가 운동의 속도인 줄 알았던 나에게, 러닝 코치는 각자의 속도대로 뛰어도 좋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너무 지치지 않고 다음 러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코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 였다. 그때부터 온전히 나에게 집중했다. 너무 힘들지는 않은지, 기분은 어떤지, 다음에 또 뛰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말이다. 15분의 러닝은, 나에게 작은 시도의 반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오래 달리기 꼴찌였던 나는,
오늘의 마음으로 러닝을 이어갈 것이다
15분의 러닝 덕분에 앞으로는 내 속도대로 걷는 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러닝은 나에게 '시도해 볼 용기'를 선물해주었다
늘 무언가 시도할 때 안전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요즘 가장 필요했던 말이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잘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시도해보면 그 과정 속에서 많은 배움을 얻게 될 거야'라는 말들에 늘 마음이 채워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첫 러닝을 통해, 시도해 볼 용기를 배워간다. 잘하지 못하도 괜찮고, 내 속도대로 가도 괜찮다.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할 테니까
내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때마다 오늘의 첫 러닝을 기억할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잘할 수도 있고, 잘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집중해야 하는 건, 온전히 내 마음과 감정이라는 것
일단 시도한 나에게 다정한 마음을 건네고, 다시 시도해 볼 용기를 주는 것! 모든 시도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