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 인가?' 면접을 보고 불합격 통보를 받고, 또 이력서를 넣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돈 버는 게 무엇인가?" 싶었다
학교에서는 일에 관련된 이야기는 배우지 못했던 우리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이력서는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면접 볼 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요즘은 SNS를 통해 다양한 경험담을 듣고 다양한 직무와 회사에 관한 소개가 되어있지만, 10년 전 그때는 회사의 이름을 들으면 '아! 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곳이 좋은 곳이었다
졸업을 하고 전공을 살리지 않고 취업을 준비했다
이렇다 할 스펙도 없고, 경력이 부족했던 신입에게 세상은 날카로웠다. 어떤 면접에서는 '서비스직이 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꼭 여기 와야겠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겨우 합격한 곳에서는 퇴사하려고 했던 사람이 다시 일을 하게 됐다며 입사 하루 전에 미안하다며 연락을 해왔다
'그만하고 싶다'
이력서 하나로 나를 평가받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 이렇다 할 스펙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지만 돈을 벌고 싶어도 자꾸 미끄러지는 상황에 자책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못나서 그런가 봐' '조금만 더 예뻤으면 면접에 붙었을까?' '나는 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지?' 꽤 오랜 시간 취업이 되지 않아 자존감은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내 인생 최악의 상사를 만났다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대학병원 비서로 입사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 당시 3명이 한 번에 그만두면서 3명을 새롭게 채용하고 있었고, 사람이 급했던 자리라 입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 며칠 전 친구는 들리는 소문으로는 한자리의 담당 교수가 괴짜라며 '근데 한자리는 괴짜가 있어서 힘들 거래.. 괜찮을까?' 라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일단 해보자!'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괴짜 교수가 나와 인연이 없기를 바라며 입사를 했지만 결국 그 괴짜 교수는 내 담당이 되었다. 서비스업 경력과 아이들을 만났던 경력을 제외하면 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교수님들에게 필요한 업무를 이메일로 전달받고, 일을 처리하느라 혼자 고군분투해야 했다. 인수인계 3일은 무용지물이었고, 간단명료하게 전달되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이메일의 내용을 아침마다 열어 보는 일이 제일 고통스러웠다
일이 더뎠지만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괴짜 교수님의 업무 처리에 책임을 다했고, 어느 순간부터 괴짜 교수님이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후, 정말 다행이야' 지금처럼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순간이 찾아왔다
'아니, 누가 이렇게 하래? 어?' 나에게 소리를 질렀던 사람은 이번에 새로 교수가 된 K였다. K는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던 모양이고, 나는 그 물건을 찾아 주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르겠지만 K가 생각한 수량이 맞지 않다며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업무 전달을 받은 사람도 내가 아니었기에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뿐이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화가 나기보다 그저 당황스러웠고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내가 이런 상황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일을 했던 것인지, 겨우 취업해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또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지. 다시 이곳을 퇴사하면 또 어두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수많은 감정이 왈칵 찾아왔다
K는 다음날 쿠키 한 박스를 사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있는 힘껏 화를 냈던 게 미안했다기보다 그저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내 자리에 쿠키를 놓았을 것이다.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무서웠고 두려웠던 감정이 먼저 찾아왔으니까
K의 일뿐만 아니라 신입 사원이라는 이유로, 내 업무가 아닌 일들도 자꾸만 나에게 밀려와 지쳐 있었던 상태였다. '일을 잘하니까 믿고 맡기지!'라는 말이 칭찬처럼 들렸지만, 그저 나에게 일을 미루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후로 수화기 너머로 언제 누가 나에게 화를 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봐'
피해자는 나인데 그 당시의 나는, 그저 내가 못난 사람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파왔다. 이대로 퇴사를 하게 된다면 패배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마음으로 일을 계속 이어갔지만 마음은 쉽게 괜찮아지지 않았다. 이유 없이 계속되는 상사의 괴롭힘 아닌 괴롭힘이 나를 계속 잃어 가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루 종일 온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결국 퇴사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오히려 괴짜 교수님은 아쉬움을 전했고, 다른 교수님은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꼭 이야기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해야 할 공부가 있다며 핑계를 대고 결국 퇴사를 하게 되었다
어느덧 직장인의 삶을 10년 정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 보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던 그 상황이 야속하기만 하다. 힘든 상황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약한 존재였다. 오늘이라면 직장 내 괴롭힘이지만 그 당시의 나는 신입사원이었기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포기를 택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한동안 마음이 치유되지 않았다
힘들게 시작한 일이었고, 잘하고 싶었다. 좋은 회사를 왜 퇴사했냐고 묻는 엄마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가끔 뉴스 기사에서 그런 이야기를 보곤 한다. 회사 생활이 힘들어 먼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마음이 아려온다. '그럴 거면 퇴사를 하지 왜 그런 길을 택한 거야?'라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힘든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적어도 한 명만이라도 '퇴사해도 괜찮아! 힘들 수 있는 거야'라는 말을 전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상사뿐만 아니라 회사의 관계에서도 삐그덕 거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힘들다'라는 마음이 찾아올 수 있다. 가끔은 두렵고, 아픈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일수록, '나'를 가장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참지 말고, 애써 웃지 말고, 마음껏 울고 피해도 괜찮다. 피해자인 내가 약한 게 아니라 가해자인 그 사람이 무례하고 잘못된 행동들을 이어가고 있는 것뿐이니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를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포기해도 괜찮다, 가끔은 도망쳐도 괜찮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내 마음이기에.
그 시절 두렵고 무서웠던 내 마음을 포근히 안아 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힘들었지, 괜찮아 네 잘못은 없어. 많이 속상했을 거고, 많이 무서웠을 거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내줘서 고마워' 7년이 지난 오늘,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의 상처를 깊게 마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