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 정도 하는 부산행 기차를 할인해 준다는 것, 1만 원대의 부산 여행 기차표가 정말로 있는 걸까 의심했지만 검색해 본 결과 정말 15000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조만간 부산에 다녀와야지!'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있었던 부산, 이틀 휴무가 있었고 부산에 가기로 했다
하루 전날 급하게 부산행 기차를 예약했다
70%의 할인률을 보여주는 기차표라 금방 사라지기도 하는데 평일이라 여유가 있었다
'왜 할인을 해주지?'라는 의문이 들 때쯤 전철 시간표를 보니 전철이 다니지 않는 이른 시간의 부산행 기차를 할인해 주는 것이었다. 아무렴 어떨까, 가고 싶다면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니까. 차를 근처에 두고 출발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부산 어떤 바다를 마주 하게 될까.
4시쯤 일어나 겨우 눈을 뜨고 준비하고 나왔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운전을 했고, 겨우 주차 자리를 찾아 어설프게 주차를 하고 배낭을 메고 뛰기 시작했다. '늦으면 절대 안 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때쯤 겨우 승강장에 도착했고, 이제 막 문이 열리던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좋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안내할게!
제주도를 좋아하기 전에 가장 좋아했던 바다는, 부산이었다.
21살 기차 여행으로 처음 왔던 부산이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나는 경주에서 일을 할 때도, 홀로 버스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부산에 오곤 했다. 바다를 보러, 수국을 보러, 벚꽃을 보러 부산을 자주 찾았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깊게 남는 곳은,
해운대의 오션뷰 찜질방이다.
여행에서 숙박비를 아껴야 했기에 찜질방에서 자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해운대 달맞이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던 찜질방, 아침이면 통창 너머로 보이는 해운대 바다가 반짝였다. 가끔 운이 좋으면 일출도 앉은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곳
그 시절에는 바다가 보이는 찜질방이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집 밖을 나오면 고생이라고 하지만 무거운 가방을 메고 불편함과 외로움을 견딜 만큼 좋아했던 여행, 부산에 가면 20대의 내가 자주 떠오른다
특히 홀로 자주 왔던 부산, 이곳에서 반짝이는 마음들을 안고 용기를 냈던 나. 잔잔한 바다 앞에서 홀로 마음을 마주 했던 소중한 시간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버린 오늘. 늘 부산에 갈 때마다 수많은 마음들이 겹쳐서 생각이 많아 지곤 한다. 좋은 기억도, 외로웠던 기억들도 모두 함께 말이다.
부산에 왔다는 설렘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출발했다
넓은 바다가 보이고, 반짝이는 윤슬이 보이는 곳. 맑은 날이면 유독 더 반짝이는 마음들이 가득 차는 곳, 이곳은 흰여울 문화마을이다. 영화 촬영지로 조용조용하게 이곳이 알려졌던 때, 이곳을 처음 방문했다
마을길을 걸을 때면 내 옆으로 바다가 따라 걷는 느낌이랄까.
소박한 마을 옆에 예쁜 바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던 곳.
흰여울마을은 내가 부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너무 좋아하는 곳인데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소박한 마을에는 비교적 높은 건물들이 생기고, 작은 골목을 걸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지나쳐 걸어야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지만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곳, 그럼에도 아침 이른 시간이라면 이곳에 와도 될 것만 같았다
우와, 너무 예쁘지 않아?
이른 아침에 도착한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여유로운 풍경을 마주 할 수 있었던 날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짐을 느꼈다. '정말 예쁘다!' 한동안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동안 미뤄왔던 마음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곤 한다
내가 왜 부산을 이토록 좋아했는지, 부산에 오면 어떤 마음들을 마주하는지. 일상 속에서 내가 지켜야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앞으로 나는 어떤 마음들을 집중하며 살아갈 것인지. 반짝이는 풍경 덕분에 수많은 마음들이 잔잔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풍경
스쳐 지나가는 골목길, 자연이 만들어 낸 멋진 풍경에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나무와 바다의 조화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나무는 자연스럽게 액자가 되었고, 바다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되었던 장면. 여행을 하면서 이런 장면들을 더 잘 찾게 되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골목에서, 나만의 작은 액자를 발견하는 일. 이렇게 내 시선에 머문 장면들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머물곤 한다.
수많은 감정들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느낌
아름 다운 자연 앞에서 늘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된다. 반짝이는 윤슬, 몽돌에 부딪혀 시원한 소리를 내는 파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경 앞에서 침묵을 유지했다
"정말 예쁘다! 다음에 또 새벽에 오자"
새벽 여행이 좋았던 이유는, 저렴한 기차값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여유로운 풍경을 먼저 만날 수 있는 값진 시간의 행복이었지
아름다운 풍경에서 마음이 뭉클해졌던 순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의 아침
10년 전,
해운대의 찜질방과 광안리의 찜질방에서 잤던 기억들. 어느 순간 광안리의찜질방이 문을 닫았고 아쉬움이 가득했다. 아침에 보이는 광안리의 풍경이 참 평온하고 좋았기에.
"오, 이번에 그 호텔에 가볼까?"
10년 후 이곳에 한 번쯤 오고 싶었다. 시설이 오래되긴 했지만 10년 전 품고 있었던 마음을 현실로 만들어 보고 싶었기에.
광안리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조식을 먹었다
10년 전 찜질방에서 보았던 풍경과 같았지만 또 다른 느낌이 가득. 1시간의 조식 시간을 여유롭게 즐겼다
'여유 롭고 참 좋다! 다음에 또 오자'
사실 여행에서 숙소를 그렇게 따지지 않았던 나지만, 여행지에서 뿐만 아니라 숙소에서 느끼는 감정들 또한 여행의 또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숙소에서도 다른 마음들을 배워간다
10년 전, 찜질방에서 홀로 마주했던 바다와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며 맞이하는 느낌이 어떤 게 더 좋다는 느낌보다는 10년 전의 내가 참 기특했고 10년 후 이곳에 다시 온 나도 참 기특했다. 지나간 추억도, 현재의 오늘도 좋은 걸 보면 그만큼 주어진 내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거겠지.
제일 먼저 나를 사랑해 주기
오랜만에 만난 부산,
그 속에서 10년 전의 나와 10년 후의 나를 마주했다. 수많은 감정들이 올라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뭉클한 마음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왜 여행을 좋아할까?'
혼자 하는 여행에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었구나.
수많은 선택지 위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며, 외롭게 느껴지던 시간들도 자연에게 위로받으며 마음을 다독였던 시간들. 내 삶만 늘 느리고 부족한 것만 같아서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을 때, 자연은 늘 나에게 응원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다 잘될 거야' 늘 여행에서 행복한 순간들을 마주하며 다시 작은 용기를 내고 삶을 이어 올 수 있었구나.
토닥토닥,
여행은 빠르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잠깐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늘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 나를 마주했던 시간. 바쁜 시간을 살다 보면 가끔 노력하는 나에 대한 칭찬보다 부족했던 나에 대한 원망이 피어오를 때가 있다. 그런 순간마다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순간에서 삶은 일시 정지가 되기도 하니까. 내 삶을 다시금 돌아보고 애쓰며 살아온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앞으로의 삶에 다시 한번 작은 용기를 내는 일.
나에게 여행이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일을 넘어서 '나'라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지 않을까.
솔직한 내 마음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내 마음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알아 가는 소중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