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슬 Aug 11. 2023

맑은 날이 아니어서 오히려 좋아

: 여행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라는 말을 믿기에.

'이번에는 어디로 떠나?'

자주 떠나고 다시 일상을 살아 가는 나에게 사람들은 묻곤 한다.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요!' 사실 여행 장소가 중요하지 않았던 나는, 최대한 가볍게 답하곤 한다


나에게 여행은,

단순히 무언가를 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내 마음을 돌아 보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기질적으로 예민함과 화를 타고 난 사람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주변의 수많은 것들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혼자 힘들어 하는 날들이 많다. 힘든 순간들에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고 믿지만, 가끔씩 찾아 오는 아픈 날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느낀다. 가끔 삶이 버거운 날이 찾아 오곤 한다. 나는 일상속의 책임감의 무게를 내려 놓기 위해, 눈물을 감추고 웃으며 자주 여행을 떠난다.


바다를 마주하며 내 마음을 안아 주는 시간.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 나에게,

홀로 떠나는 여행이 없었다면 이만큼 살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바다가 있고, 맑은 날이면 떨어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자연이 있는 곳이면 충분하기에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같은 곳을 가고 또 가도 질리기 보다 늘 새롭고 행복하다


자연은 계절에 따라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에 나에게는 같은 풍경이 아니었다. 살다가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바다를 떠올린다. 유독 제주에서의 추억이 많아서 일까, 마음에 높은 파도가 찾아 올때면 제주에게 위로 받기 위해 제주로 떠나곤 한다


맑은 날이 아니어서 오히려 좋아


누군가를 이토록 오래 지켜본 적이 있을까

누군가의 삶이 나와 닮아 있다고 느낀 적도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밝은 모습으로 여행하는 그녀의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살아 가고 싶었던 모습으로 멋지게 살아 가고 있는 사람 같았으니까. 그녀는 가끔 어딘가로 숨어 들었다. 어딘가로 떠났고 다시 돌아왔다. 밝은 그녀의 모습 뒤에 짙게 내려 앉은 그림자들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아파왔다. 그녀가 다시금 용기를 내어 삶으로 돌아 올 것이라는걸 잘 알았지만, 그 힘든 시간을 외롭게 버틸 그녀의 삶을 고요하게 응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여행을 통해 삶을 배우는 사람을 좋아 한다


"여행을 통해 내가 알게 된 한가지는 내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행위 자체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여행에서 마주 하는 수많은 선택지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여행에 대한 기억이 달라 지곤 한다


수많은 선택지 위에서 하나하나 선택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행복해지는지 스스로 알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여행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깊게 배우게 되는 경험을 한다


나는 여행지에서 가장 고민하는 일이 있다

'오늘은 일몰을 어디서 봐야 할까?' 유독 맑은 날의 하늘을 보면, 오늘의 일몰은 어디서 봐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한번은 속초로 여행을 간적이 있다. 동쪽 바다에서는 늘 일몰을 보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유독 하늘이 맑았던 날, 포기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일몰 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속초에는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감사하게도 좋은 정보를 알려 주시는 분들이 인터넷상에 가득 모여계신다. 속초에서도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곳으로 찾아 갔다. 몇번의 속초 여행을 왔지만, 이곳에서의 일몰을 처음이었다. 아름답다 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경이로웠던 풍경 앞에서 수많은 감정이 교차해 마음이 뭉클해졌다.


속초, 깊은 사랑을 주던 하루.


역시 '그럼에도' 정신은 늘 필요했구나.

동쪽이라서 일몰을 보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지나 그럼에도 일몰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찾아와 자연으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았다. 삶은 역시 포기 하지 않고 간절한 사람에게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구나 싶었던 날, 늘 자연에게 위로 받고 사랑을 받는다


10년 째, 계절마다 혼자 또는 같이 여행을 떠나곤 한다

가끔은 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를 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찾아 오기도 한다.


나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가끔은 떠나기 전날 까지도 고민을 하곤 한다. '갈까? 말까?' 홀로 떠나면 수많은 선택지 위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많은 것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가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찾아 오기도 한다. 낯선 여행지, 그곳이 어디든 잘 떠나고 잘 돌아 오자는 마음으로 씩씩한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내가 좋아 하는 책 제목을, 늘 마음에 새기며 여행을 떠난다


'맑은 날이 아니어서 오히려 좋아'

내가 좋아 하는 그녀가 선택한 문장, 앞으로 내 여행과 함께 할 문장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맑은 날이 아니더라도 오히려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날들,

여행에서도 일상속에서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한 문장이 되었다.



제주에 숨어들었다가 스며들었다


책에서 가장 먼저 읽은 챕터는, 역시 제주였다

그녀가 지은 소제목이 참 좋았다. 오래도록 바라보았고 이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함이다.


여행을 막 시작했을 때는,

내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10년 째, 어딘가로 흘러가듯 떠나다 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여행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슬픔을 가득 안고 있는 이곳을 떠나 내 마음을 돌아 보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저 여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와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자주 떠나고 자주 이곳으로 돌아 왔던 날들.



2014년, 나는 처음 제주로 스며들었다

그저 바다 앞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제주에서 두달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삶을 이어갔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때마다 내게 힘이 되어준건, 제주의 풍경들이었다. 매일 바다를 마주하고, 해질녘에는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일몰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바다를 마음껏 만났고, 해질녘의 아름다운 시간을 온전히 껴안을 수 있었으니까.


24살, 어렸던 나는 '제주에 살고 싶다'라는 말을 마음껏 하는 사람이었다.

그럴때 마다 사장 언니는 아직은 육지에서의 삶을 마음껏 살아 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언니의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28살, 다시 제주를 찾았다. 4년 동안, 넘어 지고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면서 내 마음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온전히 나만 생각하며 살아 보자!'

처음이었던것 같다. 늘 나보다 타인을 생각했던 삶, 결국 나를 돌아 보지 못했던 날들이 쌓여 무너져 내렸다. 4년만에 나는 다시 제주로 숨어 들었다. 같은 바다를 마주했지만 분명 나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처음 제주는 그저 행복이었다면 두번째 제주는 그저 제주에서 나를 안아 주기 위한 시간이었다. 모든걸 내려 놓고 온전히 '나'를 생각했던 시간, 자주 울고 가끔 행복했지만 다시 제주로 숨어 들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로 숨어 들어서 다행이었던 순간,

제주라는 섬은 내게 늘 위로가 되었다.




'제주로 숨어들었다가 스며들었다' 그녀가 적은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 왔던건, 내가 늘 제주로 숨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제주로 숨어 들었던 시간들이 깊게 궁금해졌다. 분명 제주라는 섬이, 그녀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며 아름다운 풍경들로 그녀에게 사랑을 가득 건네 주었을 것이다.


그녀는 제주라는 섬에서 사랑 받고, 사랑 하며 삶을 살아갈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녀가 느낀 제주가, 그녀가 사랑한 제주가 더 궁금해 졌던 순간. 언젠가는 제주에서 도란도란 그녀와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작은 소망을 가져 본다.


엄마라는 꽃이 영원히 시들지 않길.

생각만 하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녀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같아 보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그저 풍경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보는 사람,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그녀의 소식에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듯 했다. 덩달아 마음이 좋아졌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 두 모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나역시 행동으로 옮겨야 겠다고 마음 먹었던 날들도 많았으니까.



여행을 떠나면 내가 좋아 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내가 태어난 5월, 나를 태어나게 해주신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을 행동으로 전하고 싶었다.


꽃을 좋아 하는 엄마와 할머니를 떠올렸다

'엄마, 우리 할머니랑 꽃 보러 갈까?' 엄마에게 처음으로 제안했다. 할머니가 꽃을 좋아 하신다며 엄마도 좋아하셨지만, 할머니는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으셨는지 여행을 반가워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넓은 꽃밭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휠체어 대여가 가능한 곳을 선택했다. '엄마! 휠체어가 있데! 충분히 꽃을 볼 수 있겠어!' 설레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모시러 갔던 5월의 여행이었다


'징그랍게 예쁘다'

붉은 장미를 보며 유독 예쁘다고 말하시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행복한 모습에 덩달아 행복해 했던 나의 엄마. 형형색색 아름다웠던 장미를 보며, 위로 받고 사랑 받았던 날의 여행을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7시간의 운전 역시 나에게는 도전이었지만, 그럼에도 매년 할머니와 여행을 떠날 계획을 할 것이다. 88세 할머니가 처음 마주하셨을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드릴 수 있는 손녀일 수 있어서 좋았으니까.


엄마와 할머니의 행복이 영원히 시들지 않기를.


그럼에도 여행,
떠나고 다시 돌아 오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모든걸 던지고 떠나라 한다면 나는 고민할 것이다.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게 오직 여행만이 아니기에
내 소담한 보금자리의 따뜻함을 놓을 이유도 없기에
다만, 나는 또 떠날 것이다. 떠나는 그곳이 바꿀 내일의 나와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 그곳의 공기와 햇살, 바다가 궁금하기에.


그녀의 여행에는 늘 사람과 바다가 함께 한다

사람을 좋아 하는 만큼 사람에게 상처 받는 일도 분명 많겠지만,

그럼에도 단단해 지는 그녀의 삶을 늘 응원할 것이다.


그녀의 여행이 매순간 행복한 날들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여행을 멈추지 않는 사람.


힘든 시간속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그녀의 마음을 오랜 시간 지켜보며 느낀 마음은, 그녀는 사랑이 많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살다 보면 힘든 순간들이 찾아 오지만 그녀는 삶을 포기 하기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줄 아는 사람이기에. 인간적인 그녀의 모습을, 응원하고 배우며 살아 가고 싶다.



바다 윤슬,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에서 삶의 의미를 떠올린다


바다에서 마주 하는 윤슬은,

늘 나에게 다른 마음을 선물해 준다.


거친 파도가 휘몰아 치는 바다에서도, 윤슬은 자신만의 빛으로 반짝이곤 한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포기 하지 않는 마음으로. 여전히 나를 알아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곤 한다.


자신의 삶이 흔들릴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우리의 삶을 응원 하고 싶다. 높은 파도를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빛을 잃지 않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또 맑은 날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오늘은 맑은 날이 아니어서 좋고 내일은 맑은 날일테니 좋다.


맑아도, 맑지 않아도 모든게 우리의 삶이기에.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 가고 싶다.




맑은 날이 아니어서 오히려 좋다는걸 알게 해준, 고마운 언니에게.



이전 18화 새벽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면 생기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