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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슬 Sep 10. 2023

22살, 아늑한 집을 떠나기로 한 이유

: 아늑한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어떤 마음을 품게 될까


20살, 나는 어른이 된 줄 알았다

처음으로 받은 주민등록증을 내면 척척 해결되는 듯한 짜릿한 기분을 만끽했던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했던 시절은 빠르게 흘러갔고 물음표가 가득한 어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졸업과 동시에 고민은 깊어졌다. 하나 둘 친구들은 전공에 맞춰 취업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 선택도 할 수 없어 주춤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초중고 12년의 시간과 대학교에서의 2년, 그렇게 14년을 무언가 배운 거 같은데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속에는 다급한 물음표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모두가 첫 사회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라니.


22살의 어른이 된 줄 알았던 나, 가끔 사회생활을 시작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들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가끔은 사원증을 메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나만 빼고 모두 어른이 된 것만 같아 부럽다는 감정으로 가득 차 버렸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취업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하는 건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시기, 마음에는 높은 파도가 찾아왔고 나는 하염없이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날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나는 학창 시절부터 좋아하는 게 뚜렷한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고, 좋아하지 않는 과목은 저 밑바닥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래서 늘 학창 시절의 성적은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이 함께해 늘 중간만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과목들이 한정적이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니 내 앞에 던져진 선택 과목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물음표가 가득한 세상을 바라고 있는 일,

자유롭다고 느꼈지만 처음 겪어보는 자유로움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가득해졌다.


나는 스스로를 탐구해 보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는 연습을 하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어른이 되어 스스로에게 처음 던졌던 질문이었다. 나는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경험을 통해 행복을 얻는지 궁금했다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질문,

22살 나는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니?"

이 질문이 내가 집을 떠날 수 있도록 용기를 선물해 주었다.


첫 경험, 가장 소중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 게 당연했던 시기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행복이었다

어른이 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던 나는,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일들부터 경험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아이들과의 시간이었다

대학교 시절, 우연히 시작한 여름 캠프가 계기가 되었다


20살, 한 여름 캠프에 한조의 담당 선생님이 되었다. 10명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었지만 내 역량으로 2박 3일 동안의 아이들의 경험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낯 가리는 내 모습을 잠시 넣어 두고, 씩씩한 선생님 코스프레를 시작했다. '자 얘들아 이거 해보자!' 유독 나를 닮아 에너지가 낮은 아이들을 데리고 으쌰으쌰 하기 위해 더 큰 목소리, 더 큰 리액션으로 반응했던 2박 3일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이 내 노력을 알아주었던 걸까, 아이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웃으며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친구, 큰 목소리로 '우리 이거 해보자!' 라며 나를 돕는 친구. '선생님 선생님 이거 어때요?' 라며 자신이 만든 필통을 자랑하며 나에게 보여주던 친구. 낯가리고 의욕 없던 아이들도 어설픈 나에게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었던 시간, 부족한 나였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좋은 기억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마음과 용기가 솟아났다


'선생님 선생님!' 밝게 웃으며 나를 불러주던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던 2박 3일은 빠르게 흘러갔다


퇴소식이 있던 날, '수고했어!' 우리 조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 주며 인사를 건넸다. 나도 모르게 힘들었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들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뭉클했는지 눈물이 흘리며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 울지 마세요' 라며 인사를 건넸던 장면은 여전히 뭉클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첫 캠프의 기억이 깊게 남아 있었고 기회가 되면 캠프의 스텝으로 일하며 많은 아이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캠프 담당 직원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


나를 좋게 봐주신 분들 덕분에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캠프가 끝나고도 몇몇의 아이들과는 여전히 연락을 하며 지내기도 하며 아이들이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더 길고 깊게 해 봐도 좋겠다는 마음의 여운은 길게 남아 있었다



엄마, 저 경주에 다녀올게요!


따스한 봄이 빼꼼 고개를 내밀던 2월의 끝자락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지인의 제안으로 학교에서 배웠던 일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달 가까이 고민을 했다. 새로운 일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과 아이들과 깊게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49:51 정도로 나를 자꾸 흔들었다. 일단 내가 더 마음이 가는 51에 용기를 냈다. 돌이켜 보면, 마음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쪽으로 늘 기울어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간은 흘러 흘러 봄이 내 곁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을 때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엄마 저 경주에 다녀올게요!' 나는 결국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더 경험해 보기로 했고, 낯선 공간의 두려움이 밀려와 최대한 안전한 곳의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 눈에 들어온 곳은 가족이 운영하는 업체였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면 조금 더 안전할 거라고 판단했기에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언제 돌아올지, 무엇이 필요할지 몰라 대충 짐을 싸고 기차표를 예약했다


'나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 반, 설렘 반.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보기 위해 한 발자국 용기를 냈던 밤의 마음을 떠올리면 여전히 그날의 내가 참 기특하다는 마음뿐이다.


가볍게 짐을 쌌고 경주로 떠나는 기차에 올랐다.

'나 과연 잘 한 선택일까?' 해봐야 아는 일이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역에서 만난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모습에 긴장이 조금 풀리고서야 조금은 웃을 수 있었다. 족발을 먹고 잠들었던 낯선 밤. 22살, 이제 막 집을 떠나왔지만 엄마의 따스함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느낌이었다. 안전하고 편안한 아늑함을 포기하고 정글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 큰 용기를 낸 만큼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함께 피어오르는 밤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꽤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찾아오기 마련이다.


대학교 시절, 아이들과 함께 했던 짧은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 쌓여 왔다

'언젠가는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라는 마음은 결국 나를 아무도 없는 낯선 경주로 오게 만들었으니까.


경주로 잠시 떠난다는 나에게 친구가 이야기했다

'꼭 경주로 가야겠어?' 돌이켜보면 나는 왜 수많은 곳들 중에 가장 먼 경주로 떠나온 걸까.


우리가 생각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갈 테니까.



22살, 결국 내가 집을 떠나 온 이유는 경험을 통해 삶을 배우하는 마음이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환경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 가는지, 낯선 사람들과 나는 어떻게 소통하는지. 새로운 일에서 나는 어떻게 배우고, 행동할 것인지. 결국 내가 집을 떠나 이 먼 경주를 택했던 건, 아늑한 환경보다 낯설고 모든 게 처음인 이곳에서 온전히 '나'를 알아 가는데 집중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경주에서 나는 아이들과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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