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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슬 Sep 10. 2023

경주에서 내 꿈을 찾을 수 있을까

: 결국 사람, 사람을 통해 성장하고 싶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들었던 이야기,

울고 웃었지만 결국 작은 인연이 되었던 사람들 덕분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던 순간들.


역시 사람일은 아무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아늑한 공간을 떠나 스스로 처음 밥벌이를 했던 22살의 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으로 떠났던 나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처음 마주한 경주의 봄


3월의 경주, 처음 만난 아주 큰 벚꽃 나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제 같이 일을 하게 될 동료들과 편의점을 가는 길에 큰 벚꽃 나무를 만났다.


'우와, 벚꽃 나무 진짜 크다!' 평생 이렇게 큰 벚꽃 나무는 처음 보는 나에게,

경주에 살고 있던 동생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언니, 경주에 벚꽃 나무 엄청 많아요' 라며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나에게는 새롭고 설레는 풍경들이었다

'경주에 오기를 잘했다!' 유독 바다를 좋아하는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주를 택했던 건 꽃을 향한 이끌림이었을까. 순수한 아이들에게 깊은 사랑을 건네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캠프 일을 하면서 특별한 준비를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고 안전하게 일정을 진행하는 게 내 임무였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이곳의 내 업무는 색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주말 내내 유적지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었다. 유적지에 대해 이해하고, 외우고, 말해 보고. 과연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상상이 안 되는 채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경직된 마음으로 첫 일정을 기다렸다


첫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아마추어였지만 프로인척을 해야 했다.


2박 3일 수학여행을 오는 친구들의 한 반의 담당이 되어 인솔하고, 유적지를 설명하고, 숙소로 돌아와 아이들의 안전을 케어하는 일이 내 일 인분의 몫이었다. 수학여행을 와서 그런지 유독 설렘 가득한 아이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마주 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경험했던 예전의 일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한 반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일, 책임감은 부담감이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잘 해내고 싶었던 22살의 나.



'자 얘들아! 모이자!'

꾸준한 반복과 아이들의 순수함은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쌓이고 어설펐던 신입은, 어느덧 온전히 한 반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유적지 설명은 내가 전부 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과의 소통도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안전 앞에서는 강한 카리스마를 보이기도 했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에는 편한 언니가 되어 주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한 번뿐인, 초등학교 수학여행.

그저 나를 만나서 작은 행복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진심 어린 마음으로 다가갔던 시간이었다


이 친구들, 특별 관리 부탁드려요.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고, 다정한 선생님이 되는 건 내 욕심이었을까.


내 마음이 욕심이었던 걸까,

가끔은 마음이 안 좋은 이야기를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이 친구들은 특별 관리 좀 부탁드려요' 처음 받았던 업무 전달에 당황하고 말았다

특별 관리 대상으로 명단이 넘어온 아이는 문제아라고 낙인이 찍혀 버린 아이였다. 이 먼 곳에서까지 처음 보는 아이를 특별 관리 해 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 시작점부터 아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 버겁게 느껴졌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잘못을 해도 특별 관리 명단에 들어가 있는 친구들은 더 크게 혼이 나곤 했다

모두가 쳐다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혼이 났던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동료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건네자 '그럴 수 있지'라는 담담한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아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우리 반에 있던 그 아이에게 차별이라는 경험을 이곳에서 까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따스한 어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선생님! 이 친구 보세요!'

무표정을 일관하던 아이는 어느덧 조금씩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잘못을 하기보다 다른 친구의 잘못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며 미소를 짓던 아이, 왜 이 아이가 특별 관리 대상이라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결국 아이들의 세상에 어른이 건네주어야 할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곰곰이 고민하게 되었다


벌써부터 특별 관리 대상자로 불리고 있던 몇몇의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보다 다정함이 피어나기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이 더 아름다운 마음을 품고, 잘 자라나기를 바라는 작은 응원뿐이었다.


'잘 가! 애드라! 잘 지내!' 아이들이 떠나던 날,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손을 흔들던 너희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여전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 어디서 자라나고 있을지 너희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어디서든 잘 자라나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결국, 사람.


매주마다 일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매주마다 만나는 아이들이 달랐고, 경주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왔던 경주는 벚꽃이 시작되었던 시기였는데 어느덧 벚꽃의 끝무렵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주에 2박 3일의 시간을 똑같은 패턴으로 이어간다. 아이들을 만나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유적지를 다녀오고, 숙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그렇게 잠이 든다.


똑같은 2박 3일이어도 만나는 아이들에 따라 그 한주의 마음과 추억이 달라지곤 했다.

어떤 날은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울컥했던 순간들도 있었고, 어떤 날은 아이들과 유독 소통이 잘되어 열정이 넘치곤 했다. 알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마음이 뿌듯했던 순간들 덕분에 잘 흘려보낼 수 있었다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서 참 좋았습니다.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체력적으로도 마음적으로 조금은 지쳤던 날이었다

야간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지막 일정을 잘 마무리한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담임 선생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수많은 수학여행을 왔지만 나 같은 선생님을 보지 못했다며 아이들 앞에서 감사의 인사를 전해 주셨고, 아이들은 씩씩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쳤던 밤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을,

2박 3일 동안 선생님은 고요히 바라보고 진심 어린 마음을 건네주셨던 것이다


내가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것처럼,

선생님도 경주에서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나를 응원해 주셨던 마음이셨을까.




몸과 마음이 힘든 순간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정한 마음들이 피어올랐던 경주의 봄.


결국, 내가 경주에 온 이유는.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을까.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의 빛이 오래도록 반짝이기를,

아이들과 함께 순간에는 진심으로 응원하는 따스한 어른이 되어 주고 싶었다


결국 나는, 사람과 함께 마음의 성장을 원하는 사람이구나.

오래오래 누군가에게 따스한 마음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자며 다짐했던 경주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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