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관한 고찰
내 방에서 혼자인 것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인 것은 다른 외로움이다. 둘 다 혼자인 것은 맞지만, 도서관에서의 외로움은 함께하는 외로움이고, 내 방에서의 외로움은 혼자 하는 외로움이다. 전자가 있어야 후자도 견딜 수 있기에 도서관에 간다.
-문보명 [일기 시대] 중
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독서에 빠졌었지? 생각해보면 휴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모교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책이 많은 도서관이었지만 열람실만 열심히 이용했지, 책을 읽은 기억은 별로 없다.
휴학을 하고 엄마와 양산에 지낼 당시, 하루는 긴데 할 거는 없어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갔다.
당시에 일상이 단조로워서였는지 문학에 푹 빠져 유명하다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각종 SF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엄마가 회사로 출근하면 나는 도서관으로 출근해 책을 왕창 읽고 엄마 퇴근 전에 돌아오는 삶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가장 천국이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의 나도 외롭지 않기 위해 도서관 가는 것을 택했다.
도서관에 가면 수많은 책과 인물, 시대, 역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붙어있다.
어디 소속이세요? 하면
어 제 소속은 도서관입니다!
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충만한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현재 또 휴( )상태가 왔다.
휴학도 아니고.. 말하자면 휴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 등록한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선생님이 나의 직업을 휴직으로 체크하셨다.)
직장을 안 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금 뭐 하고 있어요?라는 질문에 더 당당하게 답하기 위해 다시금 도서관 출근을 택했다.
저는! 도서관에 다닙니다!
학생 말고 도서관생
직장인 말고 도서관인
도서관은 무지막지하게 좋은 곳이다.
커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와 달리 공짜다!
책이라는 양서가 가득하여 마음만 먹으면 종류 막론하고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데 공짜다!
운동을 배우려면 돈 내고 헬스장
악기를 배우려면 돈 내고 실용음악학원
요즘 모임도 돈 내고 회원권으로 진행하던데..
도서관은 모두에게 개방이다! 오픈! 오픈!
몇 살이세요?
뭐하시는 분이세요?
그 어떤 질문도 필요 없는데 공간이 제공된다.
함께하는데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항상 있어 외롭지도 않다.
오늘 대각선 방향에 허공에 대화를 하는 남성분이 앉으셨다. 책을 읽는 대신 책 선반을 바라보며 까르르 웃으시다가 주절주절 혼잣말을 하곤 했다. 저분에게도 도서관이 참 따뜻하고 반가운 공간이겠지?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도서관에 대한 나의 사랑이 더 커졌다.
그 사람은 거대한 반복 안에서 자신만의 내밀하고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라는 주문이나 새로운 것을 향해 뛰어들라는 유혹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내면에서 발생시키는 실질적인 새로움을 보지 못하는지도.
내향적인 아이의 성격을 외향적인 성격으로, 적극적인 성향으로 억지로 바꾸려고 하는 것과 같이.
내가 낮을 조심하고,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혐의를 받으면서까지, 고지식할 정도로 같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외부 활동이나 새로운 자극보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그리고 글을 쓰며 생산해 내는 새로움이 그것을 종종 뛰어넘기 때문이다.
-문보영 [일기 시대] 중
서울에 올라온 후 닥치는 대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자극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에 이리저리 쏘다녔던 것 같다.
사실 도서관에만 있어도 나의 내밀하고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내면에서 발생시키는 실질적인 새로움을 볼 수 있다.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 도서관 사랑을 지속시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