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몽인 Apr 18. 2022

군중 속 공상

서울 삶

군중 : 한 곳에 모인 많은 사람
공상 :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봄. 또는 그런 생각.

재미있는 자리가 많은 카페에서 책을 읽는 중이었다.

가장 개인적이고 독립 적여 보이는 _ 즉 어둡고 음침한 공간 _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읽었다.


세상 편한 자세로 웃다가 찡그리다 갖가지 표정을 지으며 집중하려는 찰나, 바깥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골방 같은 내 자리에서는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어 더욱더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 오버와 픽션적 요소 가미 주의


[벽 너머 테이블]


굉장히 목소리가 큰 중년 남성(이하 중남)과 옆에서 본의 아니게 눈치를 보는 역할을 담당한 중년 여성이 와인을 시켰다.


중남은 직원 입장에서 바라보면 전형적인 무례한 손님에 부합했다.

- 반말 사용

- ‘치즈케이크를 드실 분은 트레이에 담아오세요’ 문구 가 크게 붙어 있었음에도

“이거 뭐 어떡하라는 거야~~?” 하며 떵떵거리며 말함(소리침과 근접)


직원이 테이블에 주문한 음료를 가져다 주자

(여기는 진동벨이 있는 곳이었는데 이 테이블만 직접 서빙을 해 주셨다_ 술을 시켜서 일 수도…?_)


중남은 “아~ 감사합니다 ~ 건강하세요~”라고 말을 했고 직원 분은 의외의 친절함에 당황 + 감사함을 담아 반응했다.


항상 친절한 사람이 한 번 예민하면 ‘쟤 왜 저래!’ 하는데,
항상 불친절한 사람이 한 번 스윗하면 ‘어머 감동~’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반응 같았다.


중남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커서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고 난 소리만 들리는 영화를 보듯 이들의 외관을 상상했다.

중남은 큰 체구와 뻘건 얼굴을 가졌을 것 같았고 여성은 기품 있는 원피스를 입었을 것 같았다.


조금 있다 또 다른 남 1 여 1이 들어와 함께 앉았다.

중남이 남 1에게 “이야~ 너 살 좀 붙었다~”라고 큰소리로 외치자 그는 “다 회장님 덕분이죠!!”라고 말을 함으로써 중남의 직업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남 1은 갑자기 중국어로 통화를 시작했는데 스피커폰을 사용하는 바람에 별안간 카페 안은 약 10분 간 중국어 듣기 시험 장이 되었다.


공상 시작 :

만약 내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일행이었다면?


눈치는 보되 그 어떤 말도 못 했을 확률이 높음.


이전 직장 상사가 무례함을 과하게 표출할 때마다 코 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인이 아닌 척… 타인을 향해 ‘나도 이 사람의 행동을 참고 있어요…’라는 티만 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권력이 무서워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하면서 속으론 냉소하고 있었을 게 뻔하다.

하지만 친구들한테 가서는 연기를 곁들인 스탠딩 코미디 마냥 이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전했겠지.


[커튼 너머 테이블]


중남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정신을 못 차릴 때 또 나의

신경을 자극하는 음성이 들렸다.


직장 동료들로 추정되는 4~5명의 테이블에서 한 분이 사진을 찍자


“어머! 팀장님 사진 대박~”

“와~ 진짜 잘 찍으세요~”

우와

와아아

어머 어머


약 30초 간 사진을 칭찬하는 리액션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예상한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1. 사진이 정말 기가 막혀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퀄리티였다.

2. 나 빼고 모든 이들이 감탄하니 나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전자와 후자 중 어디에 속할까 상상했다.


공상 시작 :

만약 후자인 상황에 내가 저 그룹의 일원이었다면?


“우와…”


나의 사회생활 자아 중 가장 취약한 점이 바로 붙임성이다.

최대한 주류 분위기에 반하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아마 아주 어중간하고 어색한 리액션을 초조하게 했을 것이다.


공상 만으로 등골이 오싹하고 활자가 눈에 안 들어와 결국 자리를 옮겼다.


시간이 지난 후 또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아주 충분해 보이는 중년 남녀 6명이 내 옆 테이블에 착석하여

빠르게 청계천으로 피신했다.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의 특색이 뚜렷해서 혼자 있는데 혼자가 아닌 듯한,

군중 속 일원이 된 듯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요즘 소설을 잔뜩 읽으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묘사하고 공상하는 게 아주 재미있다.

혼자 놀기의 끝판왕 등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해지는 과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