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고찰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나의 콤플렉스로 남들을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핑계도 대지 않고 불만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수희,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겠다.
생각, 대화, 이야기, 토론 …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관해서 항상 호기심이 많았다.
이는 책을 읽는 나의 취미에서도,
친구들의 생각이 궁금해 던지는 질문에서도,
총기규제, 혐오 범죄와 같은 사회 이슈가 주제인 토론을 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한 생각에서 오는 공감이라는 흥미와
다른 생각에서 오는 시야 확장이라는 흥미를 동시에 가져다주어 질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대화를 나누기 힘든 직장이 답답했고 주된 사회상에 끌려가는 획일화된 사고가 무서웠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가능한 공간과 시간을 만들기가 더욱 힘들었다.
요즘 들어 내가 만들어 가야겠다!라는 유레카적인 깨달음을 나 홀로 느낀다.
‘무슨 직업을 가지지, 무엇으로 돈을 벌지’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더 많이 느끼고 공유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사고로 넓히니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공부가 생기고,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가에 관한 그림도 점차 그려진다.
아. 물론 노력, 타이밍, 운의 많은 협조가 필요하지만.
명사형 직업과 정해진 틀 안에서 찾기 위해 발버둥 칠게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개척해
내가 가진 온갖 재능을 끌어 모아 만들어 가면 되겠구나 싶다.
이 말은 즉슨, 안정적인 직업 타이틀과 조직의 그늘에 숨을 수 없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의 욕구를 쫓아 마음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것이 많이 벌고 인정받는 명예를 가지는 것 보다 더 가치 있다면 택해야 하는 것이다.
돈과 명예도 착착 따라와 주면 금상첨화겠으나 이는 먼 미래에 가능하다면 알아서 따라와 주었으면 좋겠고,
아니더라도 어느 누구를 원망할 필요 없으니 괜찮다.
영어학원에서 토론하다 갑자기 짜릿함을 느껴서 써본다.
그럼 이제 멋진 직장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지인에게 스테이크를 얻어먹으러 떠나야겠다.
스테이크 하나 거뜬하게 사줄 수 있는 이가 부럽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고마운 것도 고마운 거고.
스테이크 값어치만큼 재밌는 이야기를 잔뜩 해주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