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상혁 Jan 31. 2021

프랜 리보위츠처럼

'꼰대'가 매력적일 수 있는가

고교중퇴자. 유대인. 여성. 이것이 그의 정체성이다. 이처럼-당시에는 더더욱-결코 유리하다 말할 수 없는 '스펙'으로 혈혈단신 뉴욕으로 온 작가 지망생 프랜 리보위츠(Frances Ann Lebowitz).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시나요?"라는 청중의 질문에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을 쓰질 않아요."라고 대꾸하는 일흔 살 넘은 뉴욕 프로불편러의 삶. 마틴 스코세이지가 기록으로 옮겼다.   




도시인처럼


프랜 리보위츠에 대한 기사가 한겨레와 한국일보에 동시에 개재되었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질문을 던지고 프랜 리보위츠가 대답을 하는 (그리고 마틴이 배꼽을 잡고 웃는) 형태의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랜 리보위츠가 누군지는 몰라도 다큐멘터리를 만든 마틴 스코세이지는 대부분 알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내가 학창시절에 당신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다"고 말하며 영예를 돌릴 때 푸근한 할배 미소를 날리던 영화의 거장.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나. 이 다큐멘터리 역시 프랜 리보위츠의 개인적 견해를 통해 독특하고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어간다.




꼰대이지만 매력적인


한겨레에서는 "나도 이런 꼰대가 되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을 만큼 그녀는 분명 매력적인 꼰대다. 그러나 그가 과거를 추억처럼 회상한다거나 젊은이들의 행태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표현하는 것만 가지고 꼰대라고 부르기는 좀 과도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젊은이와 늙은이를 단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사유의 젊음/늙음으로 구분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대라는 표현이 사유의 늙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꼰대와 비꼰대는 한끝 차이이기는 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메릴 스트립)가 앤드리아(앤 해서웨이)에게 "야, 니가 패션을 알아? 개뿔도 모르는게 어디서.."라고 확 기를 죽일 때 앤드리아가 미란다를 꼰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취향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정치적일 수 있으며 삶이 돌아가는 방식에 있어서의 정치성을 인식하지 못한 피상적 진보성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찰은 프랜 리보위츠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릍테면 그녀가 젊었을 때 실제로 '택시 드라이버'를 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내가 돈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줄 알아?"라는 자의식이야말로 꼰대스러운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아마도 이런 점들이 뉴욕의 젊은이들이 일흔 살 할머니의 글을 읽고 강연을 듣는 이유일 것이다.



할머니에 대한 통속성을 깨는


방금 '할머니'라는 표현을 썼지만, 우리 사회에서 '할머니'라는 이미지가 지니고 있는 통속성을 프랜 리보위츠에게는 전혀 덧씌울 수 없다는 것도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즐거움이다. 그녀는 인자하지도 않고 덕담을 늘어놓지도 않으며 뉴욕의 과거를 회상하지만, 그 과거가 미화되어 표현되지도 않는다. 인상 깊었던 부분 몇 가지. 첫째, '건강'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현대 (미국)사회를 향하여 "건강하게 사는 법은 알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른다"고 일갈하는 장면. 둘째, "좋은 집 놔두고 왜 바리바리 싸들고 해외로 나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일상의 삶이 어떻기에? 내가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돌아다니는 이유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만 넉넉하다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 셋째, 집에서 뭘 하길래? 책 보려고! 7화 <책으로 만난 세계>는 책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다. "저는 책을 버리는 능력은 정말, 하나도, 전혀 없어요. 책을 버릴 수가 없어요. 사람을 버리는 것 같거든요. 오히려 버리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지만요. (마틴 스코세이지 폭소) 제가 보기엔 책이야말로 사람에 가장 가까워요."



책을 사랑하는


나 역시 책과 독서를 사랑하는지라 마지막 화 「책으로 만난 세계」를 특히 흥미롭게 시청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이 없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컴퓨터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책을 휴지통에 버리는 몰상식에 대하여 분개하며 "아무리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책은 책이니까"라며 책에 대한 무한애정을 보인다. 심지어 사람을 초대하는 것도 싫어하는 그녀가 자신의 자산과 수입을 무시하고 엄청나게 큰 집에 살고 있는 이유도 책이 많아서다. (너무 어울리지 않게 큰 집을, 그것도 가장 비쌀 때 구입한지라 자신은 로또에 당첨되고 싶은 정도를 넘어 반드시 당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는 뉴욕 4번가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헌책방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Strand Book Store


옛날 4번가에는 헌책방이 정말 많았어요. 그 서점들은 주인이 죽으면 끝이었죠. 책을 파는 곳이 아니었거든요. 절대 안 팔아요. 먼지투성이 주인들이 먼지투성이 책을 읽으면서 앉아 있다가 손님들이 들어가면 짜증난 표정으로 고개를 들죠. (웃음) 이렇게 책을 골라서 얼마냐고 물으면 (웃음) 이제 4번가에는 스트랜드 뿐이에요.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오른 마천루 속에서 스트랜드가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헌책방 주인이 건물주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어떻게 보면 여기서 버티는 거에요. 이 서점 주인이 건물주인데 이 건물을 팔라고 어마어마한 돈을 제시했대요. 수백만 달러를요. 책 팔아서는 수백만 달러 못 벌죠. 1925년부터 팔았어도 그만큼은 못 벌어요. 그래도 거절했대요. 


오래된 장서들로 가득한 책장을 배경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구도도 신선하다. 여성 지식인이 메인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흔치 않지만 이런 구도 자체가 (남성 석학 말고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토니 모리슨


7화 마지막에 토니 모리슨에 대한 추모의 글이 나오는 걸 보고 그녀가 2019년 사망했다는 걸 알았다. 다큐에서는 몇 가지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남성이 이끌어가는 토크쇼의 객으로 출연하여 예의 재담과 독설을 날리는 것과는 달리 그녀가 호스트가 되어 대화를 이끄는 장면에 토니 모리슨이 등장한다. 비평가였던 프랜 리보위츠에게 토니 모리슨은 글쓰기의 스승이자 문단의 파트너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좋은 말벗이자 탁월했던 선배 작가가 먼저 세상을 등졌을 때 상심이 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성운동 특히 최근의 미투 운동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기여를 한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여성이 세상의 중심이었다면 고무줄 리그나 공기놀이 대회를 중계했을 것이라며 농구나 슈퍼볼 같은 스포츠에 온국민이 열광하고 그게 당연한 듯이 바라보는 시각의 남성편향성에 불편함을 내뱉는 것도 인상적이다.




재능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재능'에 대하여 "선천적이지도 후천적이지도 않으며 그저 우연히 흩뿌려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재능은 부모의 것을 물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교육을 받는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인데, 이는 교육에서의 불평등 -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성적이 좋은 현상 - 이 얼마나 비합리적이며, 사회로서도 큰 손실인지 깨닫게 해준다. 혹시라도 그녀가 재능을 언급하는 것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느낄 분을 위하여 말한다. 그녀는 고교 중퇴자다. (위키백과에는 그녀의 학력이 모리스타운 하이스쿨로 나와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내가 잘 못 들었나?)



덧붙여서


어제 블로그에서 넷플릭스와 캔맥주를 마치 공동체의 적처럼 묘사했는데...쩝.. 할 말이 없다. (단, 스낵은 없이 캔맥주만.. 쿨럭) 하나 더. 앞에서 프랜 리보위츠를 '꼰대'라고 표현했는데(물론 좋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다큐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스파이크 리 - 맞다. 아카데미에서 "봉준호"하고 외쳤던 바로 그 스파이크 리다 - 와 대화를 나눌 때, 그녀의 (간혹 나타나는) 당혹해하는 표정을 보면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보다는 확실히 '꼰대력'이 낮다는 것이 느껴진다.





인상 깊었던 부분 몇 가지. 첫째, '건강'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현대 (미국)사회를 향하여 "건강하게 사는 법은 알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른다"고 일갈하는 장면. 둘째, "좋은 집 놔두고 왜 바리바리 싸들고 해외로 나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일상의 삶이 어떻기에? 내가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돌아다니는 이유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만 넉넉하다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 셋째, 집에서 뭘 하길래? 책 보려고! 7화 <책으로 만난 세계>는 책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다. "저는 책을 버리는 능력은 정말, 하나도, 전혀 없어요. 책을 버릴 수가 없어요. 사람을 버리는 것 같거든요. 오히려 버리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지만요. 제가 보기엔 책이야말로 사람에 가장 가까워요."



Frances Ann Lebowitz (1950 ~ )


매거진의 이전글 얘들아! 강촌 가즈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