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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Sep 21. 2015

가르침엔 용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교사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함께 읽는 책 No. 05

파커 J. 파머(2013),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파커 J. 파머(2013),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울시 연남동에 위치한 모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2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신규진 선생님, 수학교사의 길로 이끌어주셨던 조두연 선생님, 그리고 이과생으로서는 드물게 지리를 선택했던 나를 가외로 지도해주셨던 김헌재 선생님의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과 항상 열린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셨던 이기백 선생님, 품위 있고 유머러스한 수업을 펼치셨던 허영훈 선생님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지나고도 한참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1년 고3 수험생의 하루. 학교를 마친 세 남학생이 학교 후문 근처에 위치한 총각 교사의 자취방으로 향합니다. 선생님의 작은 책상을 독차지한 남학생들은 이과생으로는 드물게 사회가 아닌 지리를 선택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지리공부를 위해 선생님 댁으로 모였지만, 모든 것이 항상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남교사들의 아지트 구실을 하던 그 곳에서는 종종 맥주파티가 벌어지기도 했으니까요. 어떤 때는 선생님의 고교 동창들과 함께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밤을 새다 시피하고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선생님이 차려놓은 흰쌀밥을 먹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인가     


25년이 흐른 지금, 세 남학생 중 한 명은 그의 스승과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바로 필자입니다. 파커 J. 파머는 그의 책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당신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교사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 그 스승이 당신에게 커다란 감화를 주었느냐고 묻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젊은 시절 중요한 고비마다, 그러니까 저의 정체성이 성장하던 청소년기, 대학 시절, 교사 초창기 때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한때 ‘나에게는 왜 스승이 없는가?’라고 불만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만하고 철없던 생각이었습니다. 나의 성장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도 수많은 스승들이 있었습니다. 은연중에 그들을 닮으려 노력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교사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말마따나 오늘날은 교사 때리기가 하나의 대중 스포츠가 된 시대입니다. 집단 따돌림, 서열 매기기, 갈취와 폭력 … 아무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사회적 질병에 대하여, 교사들이 그 치유방법을 모른다며 비난하는 형국입니다. 교사가 만만한 타깃이 된 이유는 교사가 “아주 평범한 인종이고 또 반격할 만한 힘도 별로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현대생활의 지나친 요구사항에 겁먹은 나머지 이 사회는 교사를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참아낼 수 없는 죄악에 대한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교직은 어느덧 상처를 받는 직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속적인 상처는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남기고 교사로 하여금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잃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교사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손쉬운 해결책은 이 사회가 교사들에게 저지르는 실수는 똑같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무책임한 부모와 결손가정, 무기력한 공교육, 텔레비전과 대중문화의 통속성,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제도 때문에 그 어떤 노력도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파커 J. 파머는 인상적인 일화를 소개합니다.     


“교수들은 오전 내내 학생의 질에 대해서 개탄했습니다. 좀 더 의욕적인 학생들을 모집하지 않는 한 이 실험 프로젝트는 실패할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그래서 학장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한참 동안 듣고만 있었지요. 아무튼 교수들은 학생들이 틀려먹었다는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들은 환자를 더 이상 보내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병원 의사 같군요. ‘우리는 환자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라요. 그러니 우리를 좋은 의사로 만들어 주는 건강한 환자들만 보내 주세요.’ 당신들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의 질병을 부당하게 학교로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옥에서 온 학생’에 대한 풍문과 고정관념을 교직에 적용하면 자신의 학생들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학교와 병원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위의 일화는 교직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일깨워 줍니다. 중한 환자들은 보통 의식이 없거나, 의식이 있더라도 의사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냅니다. 반면에 학생들은 생생하게 살아있을 뿐 아니라 공공연히 나는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외치는 간절한 신호일 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저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의사들은 환자의 치유를 위해 서로 협력합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어떤가요? 동료들과의 협업collaboration은 사실 교사들에게 더 필요한 요소입니다.

       


교육은 젊은 사람들을 향한 환대이다     


“훌륭한 가르침은 젊은 사람들을 향한 환대의 행위이다. 환대는 손님보다는 주인에게 더 많은 덕이 돌아가는 행위이다. 환대의 개념은 호혜주의가 흥성했던 고대에서 생겨난 것이다. (……) 환대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 의지하는 사회조직의 무한한 연결망에 참여한다. 손님에게 내 준 음식과 숙소라는 선물은 주인에게는 희망의 선물이 되는 것이다. 교육 역시 이런 호혜주의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교직 17년차에 접어든 지금, 나의 스승들을 향했을 법한 교육에 대한 불신과 절망의 메아리들이 이제는 나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나와 같은 젊은이들을 가르쳤던 선배교사들의 환대를 떠올립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스승인가?’     


“이제 내가 누군가에게 스승이 되어 주어야 할 때인 것이다. 이제 고개를 돌려 후학의 출현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받았던 그 선물을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교육의 특별한 매력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올해의 성공적인 수업(또는 학급운영)이 내년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교사는 영원한 현역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교사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용기를 내어 먼저 손을 내밉니다. 내 손을 잡아 주었던 나의 스승들을 떠올리며.



젊은 사람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교육의 특별한 매력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올해의 성공적인 수업(또는 학급운영)이 내년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교사는 영원한 현역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교사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함께 읽는 책 No. 05

파커 J. 파머(2013), 『가르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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