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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Sep 18. 2015

대한민국 교사 열전列傳

윤지형, <교사탐구 1, 2, 3>

함께 읽는 책 No. 04

윤지형, 『나는 왜 교사인가』·『다시 교육의 희망을 묻는다면』·『세상의 교사로 살다』


윤지형, 『나는 왜 교사인가』·『다시 교육의 희망을 묻는다면』·『세상의 교사로 살다』



나는 대한민국 선생들을 믿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 ‘선생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사악邪惡하기보다 그저 사적私的이고, 위험하다기보다 약간 수상쩍을 뿐이며, 절망적이기보다 단지 무풍지대 선호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인 김수영의 노래처럼 ‘하, 그림자가 없다.’ 스승은 그 그림자도 함부로 밟아서는 안 된다는 고풍스런 말씀도 있지만 어쩌면 밟을 그림자 자체가 모호한 것이 ‘그들’의 존재 방식일지 모른다. 저 도도한 개똥철학과 정치적 허무주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봉건적 상명하복과 독야청정의 포즈, 완강한 자기 보호 본능과 기묘한 회색빛 냉소, 우물 안 개구리의 고지식함과 본말을 전도하는 독단, 어이없는 위선과 천박한 처세술, 옹졸한 이기심과 적당한 교양주의, 돌연한 군인정신에다 초역사를 넘나드는 도사연함 … ”     


스스로가 현직 고교 국어선생인 저자는 얄궂게도 “대한민국 선생들을 믿지 않는다”라는 말로 ‘교사탐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선생들을 믿지 않는다는 그가 10년이 넘게 대한민국의 교사들을 탐구해온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청년 교사 시절부터 내겐 하나의 미션(!)이 있었다. 내가 내게 부과했을 뿐인 그것은 ‘교사를 위한 변명’이란 제목의 책을 쓰는 일이었다. 왜? 선생 노릇 하는 길에서, ‘교사 — 교육’운동의 길에서 아름다운 교사를 만날 때면 그 삶의 빛과 그림자를 기록하여 세상을 향해 ‘이 교사를 보라’고 말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의 서른여덟 명의 교사들을 만나 “삼천리 방방곡곡에 존재하는 빛나는 교사들의 빛나는 순간들”을 기록해온 이유는 오직 하나. “학교의 변화는 가능할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잘하는 것은 깎아내리고 잘 못하는 것은 흉보는 것. 교직 사회의 불편한 진실입니다. 교직 사회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가 바로 동료성의 부재입니다. 교사의 동료성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자신과 동료 교사의 전문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 간의 헌신과 신뢰의 관계 맺음을 의미합니다. 학교공동체와 동료성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가장 성공적인 학교는 동료성을 바탕으로 한 전문적인 공동체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재구조화한 학교들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들에 의하면 잘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듬고 격려해주며,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뻐하고 칭찬해주는 동료를 가진 학교가 그렇지 않은 학교보다 교사들의 효능성, 집단적인 책임감, 교직 전문성 지각을 높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공동체 의식과 학업 성취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직 사회는 고립된 섬들의 연합입니다. 더욱이 피드백 없는 교원 평가와 배려 없는 차등 성과급 지급으로 인하여 교사들 간의 동료성은 더욱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의 성찰과 깨달음은 나와 연결되어 있는 집단의 구성원들의 성찰과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긍정적인(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교사마다 품고 있는 빛나는 재능들이 동료성의 이름으로 서로 간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때, 그것은 교사 개인의 교육력을 넘어 그들이 속한 학교와 지역사회의 교육력으로 나타납니다. ‘좋은 교사’는 많지만 ‘좋은 교사들’은 많지 않은 역설적인 현실. 우리가 동료성의 범위를 시・공간적으로 확장시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동료의 눈으로 바라본 교사열전     


이 책은 서른여덟 명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학교에 풀벌레가 뛰어 노는 작은 연못과 보리밭을 만드는 미술 선생님, 대한민국 학교는 우리 아이들의 몸을 어떻게 다루느냐고 묻는 체육 선생님, 담임 맡은 아이들을 위해 그동안 800편이 넘는 생일시를 써온, 그러나 사학재단의 전횡에는 불같이 일어선 영어 선생님, 세상으로 보낸 제자들을 불러 퇴임식을 대신한 마지막 수업을 꿈꾸는 - 그리고 올 해 실제로 그 꿈을 이룬 – 국어 선생님, 배움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이 없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를 꿈꾸는 도덕 선생님, …     


교사탐구 1 《나는 왜 교사인가》와 교사탐구 2 《다시 교육의 희망을 묻는다면》이 학교 담장 안 교사들의 담장 안 분투에 관한 이야기라면, 교사탐구 3 《세상의 교사로 살다》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교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삶과 교육의 농적農的 전환을 기도企圖하는 ‘갓골 농장’이야기, 마을 자체가 인문학적 생태학교인 ‘우포늪’ 이야기, 동아시아 동포 어린이들의 우정과 평화의 연대가 꽃피어나는 ‘어린이 희망학교’ 이야기, 어린 노동자 학생들의 배움터이자 삶의 보금자리로서 교사와 학생이 피땀 흘려 세운 ‘부천실고’ 이야기, 장애인들의 눈물겨운 야간학교이자 삶과 문화의 공동체인 ‘노들야학’ 이야기, 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부터 시작해 교사와 학부모가 힘을 합쳐 만든 도시형 중등 대안학교 ‘불이학교’ 이야기, …   

  

“다시 묻건대, 학교의 변화는 가능할까? 교사들은 정녕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행복한 아이들의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대저 역사는 진보하는가? 물론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되묻게 된다. 역사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캄캄한 밤길이 내 앞으로 뻗어 있다. 대낮에도 캄캄한 길. 캄캄함, 이것만이 지금 내겐 가장 리얼리티고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느낀다. … (중략) … 그렇지만 이 어두운 세상 어딘가엔 스스로 불을 밝힌 선생님이 별처럼 존재하고 스스로 샘물이 된 선생님이 거짓말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내 마음은 학교의 변화도 역사의 진보도 아닌, 바로 오늘 한 점의 불빛, 옹달샘을 통해서만 비로소 열리고 내일이면 도로 닫힐 수 있음을 또한 나는 분명히 알게 된다. 때가 되면 다시 열리리란 것도.”    

 

저자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희망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건 어쩌면 교육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병든 사회가 병든 학교를 만듭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학교는 죽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사실 사회의 죽음, 인간의 죽음을 증언한 것입니다.     


“캄캄함이 아름다운 것, 어딘가에 불빛-별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빛이 없다면 어두움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절망을 인식하는 눈빛들이 모일 때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의 변화는 가능할까?”라는 질문들이 모일 때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사마다 품고 있는 빛나는 재능들이 동료성의 이름으로 서로 간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때, 그것은 교사 개인의 교육력을 넘어 그들이 속한 학교와 지역사회의 교육력으로 나타납니다. ‘좋은 교사’는 많지만 ‘좋은 교사들’은 많지 않은 역설적인 현실. 우리가 동료성의 범위를 시・공간적으로 확장시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함께 읽는 책 No. 04

윤지형, <나는 왜 교사인가>·<다시 교육의 희망을 묻는다면>·<세상의 교사로 살다>

윤지형, 『나는 왜 교사인가』·『다시 교육의 희망을 묻는다면』·『세상의 교사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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