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1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민주주의의 정원을 만들겠습니다

영림중학교 학부모 소식 <영울림> 인사말

by 윤상혁 Jan 01. 2025
아래로
가르침에 대한 존경과 배움에 대한 경탄이 넘치는
민주주의의 정원 영림중학교를 만들어가겠습니다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영림중학교장 윤상혁입니다.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과 3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를 막아낸 190명의 국회의원들. 그리고 곧 이어진 국회의 탄핵 표결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모인 시민들. 충격과 분노, 혼란과 우려 속에 맞이한 8일 새벽. 텔레비전에서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이 흘러나왔습니다. 감격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노벨문학상 강연이라니. 실의에 빠진 대한국민들에게 위로가 되는 한강 작가의 목소리를 세계시민들과 함께 경청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지난 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유년 시절에 쓴 얇은 중철 제본의 시집을 발견합니다. 시집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작가의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죠.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작가의 눈에 들어옵니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습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유년 시절의 시집을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으면서 작가는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답니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멀리 스톡홀롬에서 읊조리는 한강 작가의 음성을 서울의 밤에 들으면서 만약 지금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이라면, 나는 한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그러면서 작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빛나는 실을 붙잡았습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희망의 금실을.


문득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을 상기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교육기본법 제2조). 위정자의 잘못된 판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역사의 퇴행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을 보면서 우리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1979년 개교한 오랜 전통과 빛나는 혁신의 영림중학교는 근면·예지·협동을 교훈으로 ‘함께 가르치고 서로 배우며 돌봄을 통해 꿈을 키워가는 행복한 학교’를 추구해 왔습니다. 이를 위한 중점 교육목표로 ① 배움이 느린 학생까지 책임지는 맞춤형 교육, ②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가는 역량기반 교육, ③ 앎과 삶을 연결하는 지역사회 연계 문화예술교육, 그리고 ④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생태전환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왔습니다. 2025학년도에도 변함없이 가르침에 대한 존경과 배움에 대한 경탄이 넘치는 민주주의의 정원으로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림중학교장 윤상혁 드림






이 글은 영림중학교 학부모회에서 매년 발행하는 학부모소식 『영울림』 제17호(2024년 12월 31일 발간)에 수록되었습니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매거진의 이전글 AIDT가 우려되는 이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