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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Apr 02. 2016

학교 혁신을 위한 새로운 길 찾기

한 번에 한 아이씩, 메트스쿨의 학교 혁신 프로젝트

함께 읽는 책 No. 14

엘리엇 워셔, 찰스 모즈카우스키(2014), 『넘나들며 배우기』


엘리엇 워셔, 찰스 모즈카우스키(2014), 『넘나들며 배우기』



학교와 멀어지는 아이들 


영국의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 로저 워터스는 불우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영국의 획일적인 교육제도, 특히 기숙학교에 대한 비판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The Wall》 앨범에 수록된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II)> 가 바로 그것이다. 이 노래는 다음과 같은 가사로 시작된다.


We don't need no education. 
(우린 이런 식의 교육은 필요 없어요.)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우리 생각을 조종당하고 싶지 않아요.)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교실에서 비꼬는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요.)
Teachers, leave them kids alone.
(선생님들, 아이들을 내버려 두세요.)


“우린 이런 식의 교육은 필요 없어요.”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아니 형편상 떠나지는 못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이미 학교와 멀어진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학생들은 왜 학교와 멀어지는가? 너무 점잖은 표현처럼 들리는가? 엘리엇 워셔와 찰스 모즈카우스키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미 떠난 아이들보다는 떠날 채비를 하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에도 나와 있듯이 “일단 학교를 떠나면 다시 돌아오는 경우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책을 관통하는 저자들의 시선은 일관적이다. 학교란 무엇인가.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는 언제부턴가 학교는 배우려는 의지로 가득한 하나의 인격체가 존재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19세기 학교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시대가 변했고 아이들도 변했으나 학교는 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무엇보다 학교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배움에 대해서조차 무지한 조직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정한 표준화된 지식 꾸러미와 그 꾸러미들을 우격다짐으로 구겨 넣을 대상화된 ‘학생들’만 남아 있다. 그게 지금의 학교다.



교육, 학교 혼자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원제는 <leaving to learn> 이다.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게 없다면 학교를 떠나는 게 맞다. 그러나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가 답이 아니라는 것이 곧 학교 밖이 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실패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학교 밖에서도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


학업 실패, 문제 행동, 삶의 변고, 관심 상실. 아이들의 마음이 학교에서 멀어지게 되는 네 가지 이유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것이 표층 원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표층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의 주체가 학생들임을 알 수 있다. 사회 전체가 학생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국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가 내리는 처방이라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표층 원인에 맞춰져 있다. 문제가 개선될 리가 없다. 저자들은 수면 아래에 감춰진 심층 원인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방치, 어긋남, 재능과 흥미의 간과, 그리고 지나친 규제이다. 


학교의 자기고백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학생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학교가 변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학교는 학생들이 학교에 품는 기대 – 워셔와 모즈카우스키는 이를 관계, 연관, 의미, 적용, 선택, 도전, 놀이, 연습, 시간, 그리고 시기의 10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 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삶이 이루어질 실제적인 사회로부터 스스로 분리된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것은 오히려 실제의 삶과 연결되고자 하는 소망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들의 소망에 응답해야 한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어긋나서도 안 된다. 학생의 재능과 흥미를 간과하는 일 역시 학교의 책임을 방기하는 짓이다. 지나친 규제 역시 막아야 한다. 규제는 학생들의 자발성을 옭아맬 뿐만 아니라 교사의 열정마저 소진시킬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와? 어떻게?



넘나들며 배우기


“학교는 학생이 떠나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즉 넘나들며 배우기이다. 학교는 학생이 학습과 성취를 이루어 돌아오게 하고, 그것을 학습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로 만드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 후에 학생들이 저마다 모든 학교 경험에서 샴푸 용기에 적힌 사용법처럼 그것을 반복할 수 있어야 한다.”


‘넘나들며 배우기’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학교가 지역사회 혹은 마을로부터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는 가정에 기반을 둔다. “지역사회는 그 자체가 기회와 자원이 충만한 학습환경이다. 마을은 학생들이 성공적인 예술가, 장인, 지도자, 상인, 과학자, 그밖에 그들이 되고 싶은 시민으로 자라는데 필요한 도전과 지원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넘나들며 배우기’는 학교가 학생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각자의 상황에 맞는 독특한 능력에 집중할 수 있을까? 창의성, 발명, 혁신을 연결할 수 있을까? 배우기에 적당한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 표준과 획일을 벗어난 성취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장인정신에 기반한 탁월성에 다가갈 수 있을까?


사실 ‘넘나들며 배우기’에서 말하고 있는 학교의 혁신이 생소하거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혁신학교나 올해 전면 시행되는 자유학기제, 서울시교육청에서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오디세이 학교, 그리고 서울시의 지원으로 각 지자체에 확산되고 있는 교육혁신지구 사업 등을 일종의 ‘넘나들며 배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난제는 남아있다. 획일적인 대학선발제도이다. 역자가 옮긴이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수학능력시험 점수를 가지고 서열화된 대학에 지원하여 당락을 결정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한 개혁의 방도가 서지 않는다. (중략) 이렇게 경직된 제도 아래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귀중한 자산은 미래 세계를 이끌어 나갈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미래에 희망을 걸 수 없다.” 단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겠다는 절박한 의지가 없다면 그들이 먼저 우리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십대들의 길 찾기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다양한 통로고, 여럿이 함께 만들어야 할, 우리의 책무다. 젊은이들은 우리가 목격하지 못할 미래로 파견할 살아 있는 메시지이므로.”



이 책의 원제는 <leaving to learn> 이다.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게 없다면 학교를 떠나는 게 맞다. 그러나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가 답이 아니라는 것이 곧 학교 밖이 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실패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학교 밖에서도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



함께 읽는 책 No. 14

엘리엇 워셔, 찰스 모즈카우스키(2014), 『넘나들며 배우기』

엘리엇 워셔, 찰스 모즈카우스키(2014), 『넘나들며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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