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상혁 Jan 15. 2016

교사로 산다는 것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

함께 읽는 책 No. 12

조너선 코졸(2011), 『교사로 산다는 것』


조너선 코졸(2011), 『교사로 산다는 것』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학교 교칙이나 불문율의 말도 안 되는 관행들, 고리타분한 교과서가 주는 거짓말, 지루함, 수치심 등에 맞서 몇 십 년 동안 싸워온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학교 체제에 만연한 소심증과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오랫동안 불굴의 의지로 버텨온 비범한 교사들이 있습니다. 저자 조너선 코졸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어렵게 얻어낸 인권과 사회정의가 무효화되고 우익 정치 풍조가 온 나라를 휩쓸기 시작하던 시절,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던 교사들과 나눈 대화의 결과물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사들이 그러하듯 그들도 회의나 연수가 끝나면 빈 강의실에서 아니면 허름한 호프집에서 평생의 직업에서 겪은 딜레마와 두려움, 투쟁 등에 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공교육이 원래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양심적인 교사들은 어렵고도 고통스런 선택에 직면해 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정직하다면, 오늘날 공립학교는 시대에 뒤지고 비인간적인 기관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에게도 해당된다. 학생은 이 허위의 온상에서 12년만 지내면 되지만, 교사는 대개 여기서 종신형을 치러야 하지 않는가.”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어떤 교사는 학교의 입시부정을 제보했다가 파면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또 어떤 교사는 학교의 내부비리를 제보했다가 수업권을 박탈당하고 청소와 급식 업무를 배정받았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 교육계의 현실입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이라는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렵고도 고통스런 선택을 했으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엄혹했습니다.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어렵게 얻어낸 민주주의의 가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조너선 코졸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책 속에서 묘사되는 미국의 교육현실과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마치 데자뷰를 보는 듯 흡사합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타성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싸움을 시작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불편한 진실 앞에 마주설 용기


그는 이 시대의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이 진실을 밝히는 것, 그리고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사 자신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진실과 불복종의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닌 나의 의견을 말하기, ‘중립’이라는 가면을 벋고 양 극단에 대하여 생각하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니오”라고 말하기. 이와 함께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 그리고 누적기록부cumulative record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결국에는 경쟁사회의 논리와 맹목적 복종을 전파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적 기록부는 FBI가 시민을 사찰하던 비밀 기록부의 교육부 버전이다. 이 기록부는 FBI의 비밀 기록과 마찬가지로 학생들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 그 위험은 피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에서 온다. (중략) 과도한 권력을 소수에게 부여한다는 것. 최악의 경우에는, 비양심적이거나 무분별한 학교 관리자들이 그 학생의 앞날을 망가뜨릴 무제한의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


계속해서 코졸은 우리의 시선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 세상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불편한 진실 앞에 마주설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통 받는 자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억압하는 자들을 바라보며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생각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 급박하더라도 나쁜 것을 주입하는 교육에 대한 윤리적 대응이 좋은 것을 주입하는 교육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념이 옳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교실에서도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진보적인 언론과 보수적인 언론의 논리를 서로 대면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논쟁의 적수에 맞서 자신의 견해를 설득하기보다 지루한 의견일치의 왕국으로 망명한다. 수많은 보수주의자들처럼,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이의 견해가 가진 잠재력이 아니라 자신의 견해가 지닌 취약성이다. 이것은 우리가 학교를 변화시켜야만 하는 또 다른 커다란 이유다.”


교사가 해야 할 일은 진실과 거짓을 맞대면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견해를 허용하는 것. 이것이 핵심입니다. 철저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나의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는 진리 탐구의 두 가지 측면입니다.


우치다 타츠루가 말했듯이, 교사 자신이 배움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배우는 방법은 지금 배우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배우고 있는 배움의 당사자가 아니면 아이들은 배우는 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교육은 그들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여야 합니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의 이야기여야 합니다. 어디 딴 세상이 아니 바로 이곳의 이야기여야 합니다.


“불공정한 체제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장소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곳이다. 어떤 경우든 ‘더 큰 상황’을 조용히 인식하면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부터 실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우리가 꿈꿀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수단을 써가며 노력해야 한다.”


찰나의 인생, 영겁의 시간 속에 아이들과 우리는 촌각을 다투며 이 세상에 잠깐 나타난 동시대인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스승이라면 그것은 단지 그들이 아직 날개를 달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올랐을 때, 그들이 세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기억 속에 나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자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안다네. 아이들도 인간이거든
아이들에게 숱한 어려움에 대해 말해주게
앞으로 일어날 일만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분명히 보게 해줘야 하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장애와 난관에 대해 말해주게
마주치게 될 슬플과 고통에 대해 말해주게
지옥 같은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려주게
행복의 대가를 아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은가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되네
그냥 두면 반복되고 늘어나
나중에 우리 학생들은
우리가 용서했다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 예브게니 옙투셴코, <거짓말> 중에서



찰나의 인생, 영겁의 시간 속에 아이들과 우리는 촌각을 다투며 이 세상에 잠깐 나타난 동시대인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스승이라면 그것은 단지 그들이 아직 날개를 달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올랐을 때, 그들이 세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기억 속에 나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랍니다. 



함께 읽는 책 No. 12

조너선 코졸(2011), 『교사로 산다는 것』

조너선 코졸(2011), 『교사로 산다는 것』


이전 11화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