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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Nov 25. 2015

학교를 칭찬하라

행복한 학교를 위한 7가지 조건

함께 읽는 책 No. 10

요아힘 바우어(2009), 『학교를 칭찬하라』


요아힘 바우어(2009), 『학교를 칭찬하라』



얼마 전 초등학생 셋이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던져 그 밑에 있던 동네 주민 둘이 사망 및 중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 초기에는 사고를 당한 주민을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명 ‘캣맘’으로 소개하면서 일종의 혐오범죄일 것으로 추측하는 기사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충격적이게도 초등학생들인 것으로 밝혀지자 “학교에서 배운 자유낙하를 실험하는 중이었다”는 가해자 진술을 인용하며 학생들을 잘못 가르친 학교가 문제라는 뉘앙스를 비쳤습니다. 그것도 잠시 낙하 실험이 초등학교 3~4학년 군 교육과정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가해학생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박한 추측과 값싼 훈계들. 그 어디에서도 희생자에 대한 애도나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고뇌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혐오와 마녀사냥만이 존재하는 세상. 문제의 본질은 살피지 못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만 쏟아내는 세상. 지금 우리의 어두운 자화상입니다.  

   


모든 것이 학교의 책임인가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학교는 마녀사냥의 손쉬운 타깃입니다. 설사 학교가 타깃에서 벗어나더라도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나눠가지려 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이제 문제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됩니다. 시민의 자유와 자치가 논의되는 공론의 장이 사라진 세상에 남은 것은 오직 소비자와 민원인의 목소리 뿐입니다. ‘나’와 ‘너’는 있지만 ‘우리’는 없습니다.     


“만일 아이들이 – 유전자나 혹은 질병을 통해서 발생하는 – 생물학적으로 어떤 장애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들을 충분히 가르치지 않았다는 가능성만 남게 되고 따라서 아이들의 문제는 바로 학교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상은 틀렸을 뿐 아니라, 해로운 헛소리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일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생물학자인 저자는 힘주어 말합니다. 


"학교를 칭찬하라." 


모든 것을 학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대하여 "해로운 헛소리"라고 외치는 저자의 생각이 사뭇 궁금해집니다.  그 배경을 간단히 소개할께요. 


요아힘 바우어가 <학교를 칭찬하라>를 출간하기 일 년 전, 베른하르트 부엡이 <규율을 찬양하라>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사립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던 교육학자 베른하르트 부엡은 자신의 책을 통해 “학생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이 규율이며, 그렇게 해야 학생들은 권위를 인정하게 되고, 개개인의 욕구를 포기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되어 결국에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하지만 요아힘 바우어가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독일의 모든 공립학교에 적용하기 힘든 매우 지엽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결국 요아힘 바우어는 <규율을 찬양하라>의 반론으로 '학교를 찬양하라(이 책의 원제)'는 책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존경과 권위가 어떤 조건에서 세워지는지는 말하지 않고, 무작정 아이들에게 더 많은 존경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학교의 신경생물학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듯이 캐나다의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1960년대 ‘모델에서 배우기’라는 이론을 통해 “아동과 청소년들은 대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체험하고 관찰함으로써 배운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의 지배적 이론이었던 정신분석학과 행동심리학으로부터  외면받았던 이 이론은 1990년대 중반 ‘거울 뉴런’이라는 신경생물학적 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재조명됩니다. 


요약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시범을 보이거나 보여주는 모든 것, 즉 행동, 느낌, 감정과 기분은 관찰자의 뇌에서 마치 거울처럼 조용히 모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 교사, 학부모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학교는 ‘감정이입’과 ‘반사’라는 신경생물학적 체계가 적용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건축자재들이 어느 정도의 하중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계산한 비율을 안전율이라 하는데, 학교라는 시스템에도 세 가지 안전율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교육을 받고자 하는 동기이고, 두 번째는 배우는 학생, 가르치는 교사, 학부모가 서로 협조하려는 의지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교사와 학생이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신경 생물학자답게 요아힘 바우어는 이 세 가지 - 학습동기, 협조적인 태도, 관계 형성 – 를 학교라는 시스템의 안전율이자 ‘학교의 신경생물학’의 구성요소로 지목하면서 독일의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이상 징후들을 포착해냅니다.      


저자가 학교를 신경생물학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곳이 느끼고 생각하는 마음을 지닌 인간들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서류철이 아니듯이, 학교도 공장이 아닙니다. 가정과 마찬가지로 학교 역시 학생과 교사의 삶이 이루어지는 사회의 ‘집’이자 일종의 ‘생명체’입니다.     


따라서 학교가 병들었다는 것은 곧 이 사회가 병들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니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협력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신경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매우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가     


“아동과 청소년들이 학습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우리는 오로지 ‘교육의 문제’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그 이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 사는 방식에 익숙해 있는 어른들은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실제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황폐함을 요구하는지 잘 모른다.”     


우리는 과연 학생들을 환대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요? 피가 난무하는 종합격투기 조차도 ‘같은 체급’의 선수들이 ‘동일한 룰’을 적용받으며 경기에 임하고, 패자도 ‘대전료’를 지급받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종합격투기의 세상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책을 덮으며 ‘학교를 칭찬하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 봅니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위한 7가지 전망’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는 학교에 대한 저자의 기대와 희망이 반영된 말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문화적으로 자극을 주는 장소이자 공동체의 미래를 키워나가는 온실로서의 학교. 학교를 향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입니다.



“집을 지을 때 건축자재들이 어느 정도의 하중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계산한 비율을 안전율이라 하는데, 학교라는 시스템에도 세 가지 안전율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교육을 받고자 하는 동기이고, 두 번째는 배우는 학생, 가르치는 교사, 학부모가 서로 협조하려는 의지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교사와 학생이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함께 읽는 책 No. 10

요아힘 바우어(2009), 『학교를 칭찬하라』

요아힘 바우어(2009), 『학교를 칭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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