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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Feb 07. 2019

교육의 가장자리에서 교육학의 본질을 묻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는 방법

함께 읽는 책 No. 18

정용주(2018), 『교육학의 가장자리』


정용주(2018), 『교육학의 가장자리』



교육의 가장자리에서     


정용주의 글들이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그동안 그가 공저로 쓴 책은 여러 권 있었지만 그의 글들만 모아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의 제목이 『교육학의 가장자리』이다. 가장자리란 무엇인가.     


가장자리’는 전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불필요한 것, 주변부, 잉여의 교육 문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자리는 전체로서의 완결성을 갖는 교육학이 포괄하지 못하거나 주변화 시킨 교육 문제를 전면화 시켜 교육학을 재구성하려는 ‘위상학적 자리 배치’이다. 다시 말해 가장자리는 교육학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주변적 문제가 아니라 교육학의 전체 체계에 포괄되지 않는 어떤 잔여의 교육 문제를 적시하며 교육학 체계의 완결성과 중심 개념을 뒤흔들고 본연적 반성의 계기를 만들어 교육 문제를 재사유하기 위한 배치이다.      

- <여는 글 - 이미지를 부수기 그리고 가장자리로부터 재구성하기> 중에서     


저자는 가장자리를 동사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가장자리는 교육학 체계의 완결성과 중심 개념을 뒤흔드는 ‘위상학적 자리배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가 전면화 시키고자 한 (주변화 된) 교육 문제들은 크게 세 가지로 범주화 되고 있다. 교사/학생 담론, 진보교육 담론, 미래교육 담론이 바로 그것인데 각각의 담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교사/학생 담론 : 관료주의, 기간제 교사, 고등학생/청소년운동

진보교육 담론 : 혁신학교, 마을교육공동체, 4.16 교육 체제, 전교조운동

미래교육 담론 : 교육의 생태적 전환, 기본소득, 4차 산업 혁명, 나이주의, 광장        

  


사무실에서 광장으로     


‘관료주의’에서 시작하여 ‘광장’으로 끝나는 구성은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준다. ①국가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지식을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담아 ②정해진 공간에서 ③정해진 기간 동안 ④국가가 임명한 사람에 의해 ⑤‘학생’이라는 지위가 부여된 일정 연령의 사람들에게 ⑥가장 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근대적인 의미의 교육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교육체제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관료주의/관료제인 것이다. 관료제Bureaucracy라는 말이 사무실(bureau)과 지배(cracy)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음을 감안한다면 저자가 지향하는 종착점이 왜 ‘광장’인지, 그리고 이것을 왜 ‘휴머니즘의 페다고지’라고 지칭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교육의 제1사명이 생산적인 노동자를 양성하는 것이라는 근대적 관점을 넘어, 경쟁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였던 교육학의 패러다임을 해체하고, 분산 및 공유되는 경험, 협업에 기반을 둔 교육학 패러다임으로 교육을 전환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에서 학생의 역할은 교사가 알려 주는 내용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협력하며 배움의 공간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것이다.     

- <광장, 휴머니즘의 페다고지> 중에서     


이는 사실 그동안 교육공동체 벗과 《오늘의 교육》이 탐색해 온 중요한 주제이기도 한데, 저자가 《오늘의 교육》 1기(2011년~2014년) 편집위원을 거쳐 2기(2015년~2017년) 편집위원장을 맡아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교육공동체 벗과 《오늘의 교육》은 이 시대를 ‘교육 불가능의 시대’로 규정하고 그러한 불가능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규명하려고 애써왔다. 한편으로는 이 말이 절망과 체념의 종결어가 아니라 -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 명명된 – 전환의 사유, 즉 반성과 재사유의 언어임을 밝히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육적폐라 일컬을만한 기존의 낡은 관행들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섣불리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어려웠다. 설익은 상상이 끔찍한 악몽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동안 자칭 타칭 교육전문가들이 해결책이랍시고 내놓은 오방낭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라.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단번에 풀 수 있는 해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아니 가장 시급한 것부터 조금씩 풀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변죽만 울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만 하는 조급증에 걸린 이 사회에서 결코 환영받을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늘 일어나는 일이라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마세요! 피비린내 나는 혼란의 시대, 제도화된 무질서, 조직적인 횡포와 비인간화된 인류의 시대에 아무것도 자연스럽다고 일컬어지지 않게, 아무것도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도록.     

- 베르톨트 브레히트, <예외와 관습> 중에서    


책의 한 꼭지로도 소개되고 있지만 학창시절 브레히트의 희곡을 통해 일상적인 현실과 거리를 두는 방법을 터득한 저자에게 이 책은 그 자체로 ‘전교조 교사가 된 한 고등학생운동 활동가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는 학생으로서 “부조리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법과 정의가 일치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학교가 오로지 시험공부만을 시키는 매우 비정상적인 사회 제도라는 사실”을 깨우쳤지만 어느덧 교사가 되어 “예외상태를 선포하는 주권자의 위치”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교육하다가 집중하지 않는 학생에게 “야! 뒤에 나가 서 있어!”, “니네들 수업 태도가 왜 이래? 집중!”하면서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나는 늘 학생들에게 법의 공백을 헤집고 들어가 어떤 명령을 한다. 많은 학생들은 내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주권자의 명령으로 수용한다. (중략)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 <이제는 전교조 교사가 된 한 고등학생운동 활동가의 고백> 중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교사로서 복무하는 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교사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료주의를 비판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지금 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어. 정권이 바뀌면 또 모를까.”) 자체가 관료주의에 속하는 것임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에 등장하는 김남주의 시 <어떤 관료>와 이를 패러디한 <지식 관료>는 관료의 신념 없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관료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정하고 성실하게 상부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관료의 신념임을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련규정에 따라 판단하고 공문을 통해서만 움직이는 한(“누가 책임지는 데? 당신이 책임질 거야?”), 교사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교사의 정체성과 학교체제의 본질에 대하여 재사유하는 수밖에 없다.          



상상에서 파상으로     


이 책의 부제가 ‘교육에 대한 상상에서 파상으로’이다. 파상破像. 상을 깬다는 말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교육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파상력破像力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일은 낡은 것을 파상한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집중해 보자”고 제안한다.      


교육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교사가 학교교육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국가교육과정으로 표상되는 국가권력에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반역이자 정치적 중립의 위배로 규정되어 온 것이다. 한편 이는 국가권력이 작동하지 않는 기타 모든 영역에서 교육행정 및 학교공동체 활동에 대한 비협조로 일관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 “그거 사생활 침해 아니에요?” “당신 학급이나 신경 써요.” “규정대로 합시다.” 등등.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정치를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으로, 권력을 ‘일이 되게 하는 능력’으로 정의한 바 있다. 학교는 정치의 공간이자 권력의 공간이다. 교육의 위상학적 자리 배치를 위해서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로서의) ‘민주시민교육’이자 (권력으로서의) ‘학교자치’이다.      


서두에서 밝힌 세 가지 담론(교사/학생 담론, 진보교육 담론, 미래교육 담론)과 열두 가지 키워드(관료주의, 기간제 교사, 고등학생/청소년운동, 혁신학교, 마을교육공동체, 4.16 교육 체제, 전교조운동, 교육의 생태적 전환, 기본소득, 4차 산업 혁명, 나이주의, 광장)는 저자의 낯설게 보기의 결과물이다. 교육체제를 낯설게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저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교사의 존재에 대한 객관화-낯설게 보기-를 시도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 자신을 초등 교사이며 교육학 전공자, 그리고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 동일화하여 이해한다.”는 고백은 뜻 깊다.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그러니 그동안 당연시해왔던 모든 것을 재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21세기 교육에 있어서 교사란 어떤 존재인가를 물어야 한다. 학교는 왜 필요한 것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되새겨봐야 할 뿐만 아니라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도 필요하다. 그러나 미래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본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는 매우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점에 다시 논의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많은 이들이 교육의 미래 혹은 미래의 교육을 논함에도 불구하고 말들의 상찬만 넘쳐날 뿐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과 (반대의 이유로) 같다.  멋진 말들로 교육을 바꿀 수 있다면 백번도 더 바꿨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근본적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너무나 평범해보이지만 막상 다루기에는 만만치 않을 뿐더러 티도 나지 않는 일들. 그 속에 진실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각각의 글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의 깊이도 만만치 않다. 정용주를 처음 접한 독자라면 아마 낯설고 불편한 글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우리 교육현실의 비참에 대한 저자의 직시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는 이 책이 교육학의 가장자리에 있다고 겸양하고 있지만 사실은 교육의 가장자리를 밝힘으로써 교육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그의 교육학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희망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희망에 대한 비관만이 절망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도대체 교육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어떻게 희망의 교육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도 희망이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싶다. 교육에 한 가지 유일한 희망을 갖는다면 교육의 비참함이 자연 법칙이 아니라 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 <여는 글 - 이미지를 부수기 그리고 가장자리로부터 재구성하기>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는 매우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점에 다시 논의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많은 이들이 교육의 미래 혹은 미래의 교육을 논함에도 불구하고 말들의 상찬만 넘쳐날 뿐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멋진 말들로 교육을 바꿀 수 있다면 백번도 더 바꿨을 것이다. 교육의 근본적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너무나 평범해보이지만 막상 다루기에는 만만치 않을 뿐더러 티도 나지 않는 일들. 그 속에 진실이 있다.



함께 읽는 책 No. 17

정용주(2018), 『교육학의 가장자리』

정용주(2018), 『교육학의 가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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