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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혜 Nov 17. 2019

울기엔 내 방이 너무 좁아서

에필로그 



여행도 문장도 살아있는 한 끝나지 않아 

새로 이사한 집의 겨울은 어느 때보다 따뜻했지만 치앙마이에 머무는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졌다. 입춘이 지났을 무렵 치앙마이에는 강력한 미세먼지가 들이닥쳤는데 그즈음 일어나는 전국적인 화전(火田) 때문이라고 했다. 치앙마이의 색깔은 언제까지나 초록일 줄 알았지만 미세먼지로 뿌연 날이 보름이상 지속되자 멸망을 앞둔 무채색의 도시로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수 없었고 밖을 걸어 다니는 일도 삼가야 할 만큼 심각한 대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선뜻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치앙마이에 온 궁극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나’를 주어로 하는 글, 그 문장들을 ‘균형의 도시’ 치앙마이에서 끝맺고 싶었다. 그러나 창밖 회색빛 하늘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숨을 참는 동안에는 문장 또한 불완전했다. 여백 위에 깜빡이는 커서가 초조했다. 그렇지, 어떻게 모든 게 완벽할 수 있을까, 어떻게 완전한 균형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결국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모두 쓰지 못한 채 노트북을 닫았고 약 2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직립세안’을 할 수 있는 욕실과 나 혼자 쓰는 ‘넓은 방’이 있는 집으로. 웃음이 났다. 매번 도망치듯 떠났던 도시에서 또다시 도망을 친 것 같아서. 그리고 도망쳐 온 곳이 다름 아닌 ‘집’이라는 사실에. 


이것은 마치 해피엔딩에 가까운 이야기 같지만, 그리하여 나는 현재 곰팡이도 바퀴벌레도 없는 이 깨끗하고 따뜻한 방에서 문장을 적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주저하고 때론 절망하는 중이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깜빡이는 커서, 한 문장 한 문장이 한 세월처럼 느껴지는 막막함....

방이 넓어지고 칸이 많아지자 쓰고 싶었던 문장들이 왜소해졌고 볼품없게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봄, 여름, 가을이 갔고 다시 겨울이 왔다. 치앙마이에 가야겠다, 균형을 찾아야겠다, 거기서 이 글의 꼭 마지막 문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내 그것이 실패로 돌아갈 것임을 직감했다. 내가 살아있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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