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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 Apr 22. 2016

막차

2015.3.13

새벽 한시 십분경 이호선 막차에서 내렸다. 을지로입구라는 도심 한가운데까지만 운행되는 지하철이라 사람도 없고 취객도 없다.
노곤함을 느끼면서 지하철로 오는동안 나는 오늘도 늦게까지 열심히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기특해하며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흠칫 놀랐다.
왠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플랫폼 벤치에 가득 앉아있는거다. 무슨일인가 싶어 반대편을 살펴보니 인부들이 열심히 스크린도어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그 아저씨들은 막차가 얼른 끝나고 작업하길 기다리던 사람들인 것이다. 이 늦은 시간에.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저렇게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분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의 십분의 일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생각을 하니 이내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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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심야영화를 자주 보는데 영화관에서 나올무렵 청소하시는 분들은 간혹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그분들과 마주치기가 두렵고 부끄럽다.
노년에 그런 일은 한다는것은 일절 부끄러울일도 아니고, 감히 동정하는것은 아니지만_ 그 분들이 그 연세까지 저마다의 이유로 새벽에 나와 청소일을 하시는 동안, 나는 한번에 만원이라는 돈을 쉽게 쓰는 젊은이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솔직히 안쓰러운 마음이 안든다면 거짓말이나, 그분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칠까 생각하면 한참씩이나 부끄럽고도 마음이 아프다.
이 불편한 마음을 쇄신하고자, 지난번 시온이와 심야를 보았을땐 그분들에게 정중하게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웃어른에게 수고하세요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건 알고있는데 마땅히 대체할 말이 없다)
그러나 다른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런 상황이 오면 왜인지 그런 말을 건네기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지난번에 그냥 아무 말 없이 지나쳐 왔는데 왠일인지 오늘 지하철의 인부 아저씨들을 마주치니까 그때 청소해주시던 영화관 할아버지의 눈빛이 계속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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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수고스러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의 열심은 그들의 치열한 삶의 태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견줄바가 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부터 잠을 자는 동안에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밤의 수고로움을 겪을 것이다. 문득 이 세상은 그러한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여 이루어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열심히 살았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지하철에서 보았던 인부들, 영화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의 무게를 나 또한 느끼며 끈기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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