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피자와 떡볶이

by 치유의 통로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나의 정체를 밝혀 말한다면 여기저기서 힐난(?)의 아우성이 들려올 것만 같지만 그러나 이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 만일 먹는대로 살로 갔다면 나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식욕을 통제하며 살아왔을 것이고 그 결과 지금보다 훨씬 인내심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밥을 고봉으로 퍼먹어도, 밤늦게 먹고 마셔도 도무지 살이 안 찐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식에 대해 안이하게 만든 커다란 이유였다. 아무거나 먹어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살만 안 쪘지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늘 피곤했으며, 허기가 졌으며, 피부는 푸석푸석했으며, 생기가 없었다. 감기에 잘 걸렸고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잘못된 식단이 있었다는 것에 나는 철저히 무지했다.


정작 내 몸은 굶주리고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채식이란 기껏해야 화식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나물을 데쳐먹고, 감자와 고구마를 삶아먹었다. 된장찌개를 자글자를 끓여먹고 온갖 채소를 구워댔다. 나는 건강식을 하고 있노라 나름 자부했다. 일정한 온도 이상의 열을 가했을 때 채소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미네랄과 비타민은 사멸된다. 죽은 음식들을 단지 연명만을 위해 칼로리만 공급받으며 먹어왔던 것이다. 당신의 몸은 생명력 결핍에 의한 영양실조입니다. 땅땅땅. 판결이 떨어졌다. 그러나 알게 뭐람. 철저한 무지로 눈 어두웠던 나였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더욱 저하되는 체력과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어느 시점에서 비로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자각이 왔다. 왜 나는 그리고 사람들은 아프고 병들고 늙어가는 것일까...


드라마틱하다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내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생채식과 만난 것은... 드디어 내 몸에 생명 그대로를 온전히 공급받는 길이 열린 것이다. 완전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었다. 그때까지 나도 알지 못했던 내 몸의 진정한 요구, 활력을 필요로 하는 뿌리 깊은 갈증... 그걸 알아듣지 못하는 잘못 만난 주인에 대한 간절한 호소로 내 몸이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증상들... 이제는 그 목소리에 공명하며 더는 연명을 위한 때우기가 아닌 날마다 새로운 힘이 충전되는 제대로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감기에 걸리지 않거나 걸리더라도 역대급으로 빠른 치유가 일어났다.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된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참으로 황송하면서도 신기한 현상이었다.


건강을 얻게 되면서 경험하는 또 다른 변화는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바일 터, 나 또한 직장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침마다 출근 알레르기를 앓았으며, 그 병에 대한 응급처방으로 칼퇴를 하며 하루하루 버텨왔다. 그러나 생채식을 비롯한 자연치유요법에 골몰하면서부터 점점 상승해가는 건강 게이지에 힘입어 요즘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일삼는(?) 나를 발견하며 놀라고 있다. 예전처럼 격무에 시달리는 것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데 담담히 일을 처리해 나가면서도 체력이 고갈되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선 요즘이다. 무엇보다 직장 때문에 부대끼는 느낌이 없어서 좋다. 그러니 일단 건강하고 볼 일이다.


모임에서 간식으로 조달된 산더미 같이 쌓인 피자 앞에서 다들 킁킁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실은 속으로 가장 침흘리고 있는 건 나였다. 허나 난 먹지 않기로 선택한다. 예전 같으면 지하철 문이 열릴 때 몸보다 먼저 가방을 던지며 입장하는 1번 선수처럼 열 사람 제치고 피자를 향해 백 미터 달리기로 돌진했을 터. 무더기로 쌓인 피자가 내뿜는 풍미는 잔인하리만치 유혹적이었으나 난 단연코 먹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셋이서 간 분식집 테이블 위에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새빨간 떡볶이의 비주얼은 가히 치명적이었다. 나머지 둘에게 어서 먹으라고 쿨하게 권하며 나는 쳐다만 보고 있었지만 내 뱃속에서는 저걸 달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난 결단코 먹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차라리 하루하루 도를 닦는 심정이다. 식을 절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너무 크기에 이는 내 삶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다. 생명을 누려본 자만이 그 참맛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맛 앞에서 다른 모든 맛을 포기할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