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는 자유

by 치유의 통로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상대방이 준비한 간식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난 아무것도 준비를 못했는데... 왜냐면 내가 먹는 종류에는 지극히 한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나로서는 아무 때나 먹어서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간식은 내겐 일종의 금기나 다름 없다. 괜한 간식이랍시고 준비했다가 상대방도 나에게도 해가 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소중한 위장을 괴롭혀서는 안 될 일이다.


간식은 비스킷과 귤이었다. 상대방의 정성과 따뜻한 마음에 감동했다. 그러나 사양했다. 왜 안 먹느냐는 반응이다. 지금 속이 좋지 않다고 했다. 대부분 이 멘트 하나로 이해해주고 더 이상은 권하지 않는다. 비스킷과 귤이라... 백 번 양보해도 귤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만약 비스킷과 귤을 동시에 먹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나 환히 보이는 나로서는 절대 시도조차 해서는 안 되는 간식들이었다.


일단 시중에 파는 비스킷은 정제된 밀가루와 설탕 그리고 알 수 없는 숱한 첨가물들 반죽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불에 구웠기 때문에 생명력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 거기에 귤까지 함께 먹었을 경우, 발효가 일어나 독소가 발생하고 우리 몸은 그 독소로 인하여 고통으로 몸부림칠 것이었다. 그것은 이내 두통으로 감지될 것이고 복통 또는 변비라는 대장 장애를 일으킬 것이며, 엄청난 독소를 해독하기 위해 간장은 죽어나갈 것이다.


솔직한 의사 표현이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간곡하게 호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먹지 마세요. 우리 둘 다 같이 사는 길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아주 가까운 지인이 아닌 이상 이런 발언 자체는 좌절되며, 가까운 가족이라도 벽창호에 대고 얘기하는 것과 같거나 아니면 강한 거부 반응에 직면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적대시되기 일쑤다. 밥 먹을 때는 *도 안 건드린다는 명언을 무기 삼아 말이다.


결국 나는 이 날 아무것도 얻어먹을 수가 없었다. 그 흔한 차 한 잔 조차도... 물 한 그릇 조차도. 나도 인간이기에 비스킷도 먹고 싶고 귤도 먹고 싶다. 예전 같으면 아무런 마음의 갈등 없이 혼자 다 먹어치웠을 것이고, 상대방은 잘 먹는다며 더 내왔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먹고 싶은 걸 먹는 것보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지 않는 것이 이제는 나에게 더 중요해졌다. 자유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내 삶을 보다 자유케 하고 있다. 질병으로부터 조로로부터... 나를 무겁게 하는 온갖 것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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