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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Oct 28. 2020

우린 모두 각자의 침대가 있다

불편한 선입견

처음 볼 때 잘못 인식하거나 주관적인 느낌을 갖는 것이 선입견인 것 같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선입견이 적용되는데 선입견을 만드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어떤 사람을 직접 보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소문과 정보를 얻게 된다. 하지만 직접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면 그런 정보가 때로는 맞기도 하고 때로는 다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럼 그 소문을 만든 사람은 어떤가?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잘못된 정보와 부족한 정보로 만들어진다.

아니면 그 사람이 처음 만난 사람에게만 친절할 수도 있다. 사람을 한두 번 보고 판단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내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때 표정을 보고 옷차림을 보고 만나게 된 상황을 보고 판단하게 된다. 

처음부터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에 대해 관찰을 하게 된다.

마침 이전에 그 사람에 대해 들은 정보가 있으면 그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한다.


그 사람 너무 믿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으면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고 반대로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정보를 들었으면 무장해제되듯이 모든 말을 하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준 사람은 과연 믿을만한 사람인가?


그 사람이 나한테 피해를 주지 않았어도 마치 정의의 사도와도 같이 나와 친한 사람에게 피해를 줬으면 나도 그 사람을 마치 원수 보듯이 대해야 하는 것일까?


모든 사람을 처음부터 알아갈 수 없으니깐 직접 알아낸 정보와 주변 정보에 의존해서 판단하려고 한다.

사람을 만날 때 처음부터 믿고 만나는가 아니면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을 아직 모른다.

웬만하면 처음부터 그냥 믿고 만나려고 한다. 다행히 이런 쪽에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남들이 얘기해준 정보를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준은 내 기준이다.

사람을 믿으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믿지 못하는 상황들이 일어난다.


내 기준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은 아니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들 각자 기준으로 평가된 결과를 얘기한다.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또한 나쁜 사람이 나에게도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물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맛집이라고 갔는데 나한테는 별로 맛이 없는 경우도 있다.

평양냉면 사례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원래 냉면은 이런 맛으로 먹는 것이라고 하고 맛이 없다고 하면 난 미식가가 아니라고 절대 미각을 가진 그들 입맛에 맛있으면 맛집이라고 얘기한다.


모스크바에 갔을 때 북한 식당에서 평양냉면을 몇 번 먹어봤다. 

모두 다른 식당에서 먹었는데 의외로 맛이 있었지만 내 입맛에는 아니었다.


평양냉면은 모든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는 음식이다.

평양냉면은 맛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모든 평양냉면이 맛있을 수 없을 것이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 평양냉면을 주문하고 냉면이 나왔을 때 자기가 알던 모양이 아니면 먹기도 전에 이 집은 정통 냉면집이 아니고 퓨전으로 만든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이 선입견이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니 여태껏 먹었던 냉면보다 맛있어도 차마 맛있다는 말을 못 하고 흠집을 찾을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흠집을 찾으면서 다 먹어버린다.


고작 냉면 한 그릇에도 선입견이 있는데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선입견이 있을까?

보는 사람마다 다른 기준이 있고 냉면과 같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들 말만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내 기준에 그 사람을 틀에 맞게 넣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프로크루스테스와 같이 자기 침대에 사람을 눕혀 놓고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자르고 작으면 다리를 늘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스스로 가진 침대 크기에 다른 사람들의 키를 맞추려는 것이 선입견이 아닐까?


제주로 이사 왔다고 하면 처음 본 사람들이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그럼 가족은요?"


그 사람들 침대에는 가족이 있어야 하나보다. 

숨길 것도 없는 얘기라 이혼했다고 하면 몇 가지 반응이 나온다.

"요즘에는 이혼 많이 하더라고요..... 저 아는 누구도 이혼했고 또 누구도 이혼했고....."

난 다른 사람이 이혼한 건 궁금하지 않다.

다른 반응은 갑자기 말을 돌린다던가 위로를 하려고 노력한다.

난 지금 행복한데 위로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우울한 척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냥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예전에 그 들이 생각하는 대기업을 다니다 나왔다고 하면 대부분 정리해고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하려 한다. 내 발로 걸어 나왔는데 다들 그 좋은 데를 왜 나와서 고생하고 있냐고 할 때마다 다시 돌아가야지 그 사람들이 만족할까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 기준에 맞게 내가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들은 단지 10분 정도를 위해 나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자기들 기준에 맞는 해답을 제시하고 내가 따르기를 바란다.

냉면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 인해서 내 입맛을 그 사람들 입맛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나를 볼 때 선입견을 가지지 말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 지금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 침대에 누워 그 사람이 내 키를 보고 있는 것일까?

   



(표지 사진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GregoryButler님의 이미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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