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에 내 말을 쓰다
내가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언젠가는 누군가 내 앞에 와서 앉아 있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다면 누가 오겠냐만은 그래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으므로 올 때까지 마실 수밖에 없다.
술에 취해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반복하지만
다시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한잔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놓아버리면 되는 일인데 잡고 있는 것은 내 집착일 뿐, 집착이 무서워지기 전에 놓아야 한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듯이 모든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나도 때로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내가 마음에 들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나를 보며 답답하다는 생각도 하고 부럽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각자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먼저 조율하고 난 후에 나를 보면서 내가 미리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실망이라는 것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다.
혼자 생각해서 정해 놓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말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그렇다고 기대도 하지 않고 살면 실망도 없겠지만 희망도 없을 것이다.
희망을 잃어버려 실망인 것일까?
실망하지 않고 살기 위해선 먼저 희망을 버려야 하나보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앞으로 카드뉴스를 만들어야겠다.
세상은 이제 네 컷짜리 소식을 원한다.
장편소설이 아닌 에피소드.
시간이 점점 초단위로 움직인다.
아니 시간은 원래 초단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초단위로 움직이는 것을 알아챈 것은 이제는 우리가 초 단위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시계 초바늘이 한 바퀴 돌아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참을성.
이젠 10초 참기가 어렵다.
동영상을 볼 때 속도는 2배속.
사랑도 2배속이 되는지 궁금하다.
우리 마지막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간다.
2배속이나 5배속으로 볼 수 있으면 결과는 알 수 있겠지.
그래서 타로나 사주를 보러 다니나 보다.
빨리 끝 아니 결말을 알고 싶어서인가보다.
과정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어진다.
자기 개발서를 보면 대부분 성공한 결과로 쓰인다.
돈 많이 버는 방법에 대한 책이 있지만 과정보다는 결론이 중요하다.
어떻게 벌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운이 좋아서 또는 머리가 좋아서 벌었다고 한다.
그 돈은 어디서 왔을까?
돈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개되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은 생산적인 일일까?
공개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정리하는 것.
하루종일 쓰라고 해도 쓸 수 있는 생각들.
무의미한 글잔치, 아무 말 대잔치.
누군가를 위한 글인가?
아니 글을 쓸 때는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나?
갈테면 가라지 그렇게 힘이 들면....
스피커에선 김현식이 넋두리를 부른다.
가디가 힘들면 다시 일어나겠지라고 했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했지.
결국 이별의 종착역으로 간 것일까?
외롭다고 노래 부르는 8090년대.
그런 노래를 듣고 자라서 외로운 길을 택한 건가.
술 마시면서 글을 쓰니깐 술이 취하지 않는다.
내일 내가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다시 이 글을 읽기 위해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
생각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글은 마치 하늘에 떠가는 구름 같은 것이다.
구름을 보고 해석하는 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저 구름은 토끼구름.....
토끼랑 닮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하나도 안 닮았지만 토끼라고 보면 비슷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구름이 토끼가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구름이 토끼를 닮은 게 아니라 코끼리를 닮았다고 할 수도 있다.
누가 옳은 것일까? 구름은 스스로 토끼 모양이나 코끼리 모양을 만든 것은 아닌데 말이다.
나를 보는 사람이 나를 보고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려버리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건가?
지금은 스피커에서 김현식이 부르는 '병상에서' 앨범이 흘러나오고 있다.
힘들 때 누가 찾아올 수 있을까?
나 힘들다고 쓰면 아무도 안 올 것이다.
나도 힘든 사람을 누가 안을까?
나는 힘든 사람이 아무 말을 안 해도 찾아간 적이 있을까?
돈이 없으면 아무도 없을까?
그때 남는 건 누구일까?
내가 유명하면 사람도 옆에 있겠지?
누구나 자기 얘기가 있는데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얘기가 가지는 가치가 달라진다.
지금은 나 혼자 술 마시지만 누군가에게 계속 떠든다.
내 입은 연필이 대신하고 누군가 듣는 귀는 공책이 대신하고 있다.
결국 오지 않는 널 기다리고 있다.
각자 이유가 있고 얘기가 있고 스스로 쓰는 역사가 있다.
희망(希望)이 없는 사람은 실망(失望)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