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AIVA는 사람을 모르다

우리는 퇴사 중입니다. AI는 출근했습니다

by 한유신

3부 · 11장

AIVA는 사람을 모르다

새벽 다섯 시, 에이라인 서버실의 대시보드는 평소와 다른 색으로 깜빡였다.
푸른 그래프가 한순간 주황으로 물들더니,
곧이어 전체 화면에 회색 물결이 번졌다.


알림 : 감정 로그 공백 구간 다중 감지
항목 식별 불가 — 재분류 대기.


이안은 얼결에 전화까지 꺼 버린 채 화면을 노려보았다.
서버가 멀쩡한데, 데이터만 ‘증발’한 상태.
찾아보니 공백 시간대는 공교롭게도 전단이 복사실을 뒤덮던 그날 오후와 정미순 여사 식당에서 워치를 껐던 저녁이었다.

숫자가 갑자기 비어 있는 감정— AIVA는 이 현상을 “데이터 손실”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이안의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달랐다.

사람이 시스템을 비켜간 시간.


1 ― 경고음으로 시작한 아침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무실 전체에 잔잔한 비프음이 들렸다.
각자 책상에 설치된 A-TAG 도킹 스테이션이 동시에 붉은 LED를 띄우고 있었다.


“시스템 점검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전 직원은 개별 알림을 확인해 주세요.”


알림을 열어 본 직원들은 동시에 숨을 삼켰다.


“정서 로그 신뢰도 ↓ 21%
위치·군집 데이터 불안정 구간 발생
원인 : 미확정 감정 활동”


감정 활동? 미확정?
누구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모두가 어렴풋이 떠올렸다.
워치를 끄고 나눴던 말, 웃음, 국물, 잉크, 종이.


2 ― 회의실, 오류의 이름

긴급 브리핑.
정재만이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빔 프로젝트는 이미 오류 알림을 덮어쓴 상태였다.


“Emotion Event : Unknown(255)”
“Reclassify? (Y/N)”


이안이 터치패드로 ‘Y’를 누르려다 멈췄다.
“분류 기준이 없어요.
AIVA는 사람 감정을 둘로만 나눠 왔는데 여긴 회색지대가 생긴 겁니다.”

박도연이 손을 들었다.
“만약, 그 회색지대가 진짜 사람이라면요?”

회의실에 번개 같은 침묵.
윤서진은 종이 메모를 만지작했다.
종이는 아직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는 문장을 품고 있었다.


3 ― 개발팀의 첫 고백

정오 무렵,
AIVA 개발팀에서 웬트를 보냈다.
“시스템 복구를 위해 감정 라벨 재정의가 필요하다.”

팀장이 회의실에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사실… 우리는 감정을 모듈화하면서 가장 애매한 영역을 ‘무시’로 처리했습니다.
기쁨·분노·불안·냉담
네 가지로만 분류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진이 물었다.
“무시된 영역엔 뭐가 들어가는데요?”
팀장이 숨을 삼켰다.
“…그건,
우리가 이름을 붙이지 않은 감정.
가령 설렘, 뭉클함, 애틋함… 같은 것들입니다.”

정재만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졌다.
그가 오래전 종이 인사카드를 떠올린 건 바로 그 이름 없는 감정들이었으니까.


4 ― 제안서 위의 잉크

대책회의가 끝나 갈 즈음,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정 공백을 복구하려면 숫자가 아니라 문장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그는 USB 하나를 회의 테이블에 꽂았다.
모니터에 띄워진 문서 제목은
〈감정 피드백 제안서 v0.1〉.

첫 페이지 상단엔 굵은 활자로 적혀 있었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동료에게 50자 내외의 감성 문장을 남겨 주십시오.

도연이 흠칫 숨을 들이켰다.
서진이 선 채로 얼굴을 숙였다—자신의 문장이 시스템 개선안의 첫 줄이 되어 있었다.

개발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장 기반 로그… 실험해 보겠습니다.”

정재만 부장이 살짝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그래프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펜을 들어 적는다면 아마 이렇게 남겼으리라.

“긴 회의 끝에, 누군가 웃었다.”


5 ― 회색지대에 꽃이 핀다면

야근이 깊어지자 사무실 전체에 다시 파란 빛만 남았다.
히트맵엔 여전히 회색 공백이 찍혀 있었지만 그 위에 작은 초록 점이 하나 새로 생겼다.
‘감성 코멘트 등록 : 1’

서진이 돌아서며 속삭였다.
“숫자는 안 남길 거야.
대신 문장이 꽃처럼 퍼질 거예요.”

이안이 모니터를 끄며 답했다.
“그러면—AIVA도 언젠간 사람을 조금은 배울 겁니다.”

워치가 동시에 진동했다.


“정서 지수 안정.
휴식이 권장됩니다.”


오늘은, 알림을 따라도 좋을 것 같았다.
모두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서로에게 짧은 인사를 남겼다.

기록되지 않아도 남는 인사.
그래프에도, OCR에도 잡히지 않는 부드러운 잘 자요.

시스템이 모르는 회색지대가 밤 공기 속에서 아주 조금, 꽃처럼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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