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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Sep 06. 2019

다시 혼자 살기

CD는 왜 들고 다니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혼자 살기 시작한 건 모스크바 유학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모스크바로 가서 혼자 살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안 하던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심지어 청소도 하기 시작했다.




다시 혼자 살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별거를 시작한 것이다.

같이 사는 것이 힘들어 나와서 살기 시작하고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한국으로 올 때 당시 입사한 회사에서 이사 비용을 지원해줘서 컨테이너에 짐을 싣고 들어왔다. 특별히 많이 실을 것도 없었지만 항공으로 오는 것보다는 많은 짐을 가져올 수 있었다. 특히 책을 많이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책을 가져왔지만 읽지는 않았다. 전공책들과 러시아어 사전들인데 한국에 와서 전공보다는 트리즈로 담당 업무가 바뀌어서 그냥 전시용으로 놓고 살고 있다.


다시 혼자 살면서 집에서 들고 나온 것은 옷과 책, 그리고 CD를 가지고 나왔다.

큰 집에 살면서 내 것이라고는 옷과 몇몇 잡화들, 책과 CD가 전부였다.

모스크바에 유학 갈 때 내가 가져간 것은 트렁크 하나였는데 옷과 러시아어 사전 그리고 CD였다.

요즘에는 MP3로 저장해서 가던가 아니면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왜 그리 CD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음악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CD를 보면 나도 이해 안 가는 조합이다.

재즈, 팝, 포크송, 클래식 음악, 가요, 블루스, 레게, 연주곡, 힙합......


지금 가지고 있는 CD가 대부분 모스크바에서 듣던 것들이다. 러시아 가요도 몇 장 있고 빅토르 최 CD도 있고 러시아 민속노래, 러시아 동요 (아들을 위해 샀나 보다)도 있다.


이번에 이사 와서 TV를 없앴다. 사실 TV가 그리 필요하지 않았는데 여긴 인터넷 신청을 하라고 해서 없애버리고 관리사무실에 얘기해서 TV 시청료도 면제받는다.


카세트테이프도 돌아가고 CD와 라디오도 되는 기기 (?)를 집에서 나올 때 가져왔다.

라디오를 듣는데 주파수가 맞춰지고 잘 나오는 라디오가 CBS 라디오다.

음악이 대부분 딱 내가 모스크바에 있을 당시 노래들이 나온다.

어제 들은 것 중에는 "그냥 걸었어"가 있었다.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해서.......

비 오니깐 나오는 노래는 "비 오는 날에 수채화"


가지고 있는 CD는 2001년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는 CD를 사지 않았나 보다.

지금은 CD를 버리고 있다. 많이 듣고 관리를 함부로 해서 CD가 읽히지 않는 것들이 많다. 반짝이는 CD에 길이 나있다. 오솔길, 고속도로, 지방 간선도로 등.


아들이 LP를 듣는다고 해서 LP player를 사주고 LP를 사줬다.

집에 상당히 많은 LP가 있는데 나랑 취향이 맞지 않은 것인지 예전 것이라 모르는 것인지 새로운 LP를 사서 듣는다. 가끔 아들 연습실 가서 얻어 듣곤 하는데 역시 불편하다.




혼자 살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때보다 나이가 거의 20살은 더 먹었지만 난 혼자 살 수 있다.

이제는 CD를 들고 다닐 일도 책을 들고 다닐 일도 없이 노트북과 스마트 폰에 모든 음악과 책이 들어가 있고 혼자 살기에 불편함이 없는 음식들과 여러 제품이 있지만 내 마음은 아직 모스크바에서 혼자 살던 때와 같다.

그때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지금 다시 행복을 찾고 즐거워지려고 한다.


감사하게도 나에게 이런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제대로 나오는 CD가 없고 CD 케이스와 내용물이 안 맞는 것이 많지만 예전과 같이 행복한 마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감사하다.


지난번 살던 집보다 2배나 넓은 집이지만 (사실 1년 만에 집을 두배 넓히기는 쉽지 않잖아?) 이 안에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


이제 집이 8평이 되었다.


혼자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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