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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Oct 18. 2019

커피 한잔과 또 다른 한잔

커피 컵을 버려야 다시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서 종이컵에 커피를 한 잔 들고 나온다.

커피가 맛있어서 조금씩 마시면서 거리를 걷는다.


다 마신 종이컵은 이제 쓰레기가 되었다.

커피가 없는 종이컵을 들고 다니기 번거롭고 쓰레기통을 찾아 버리고 싶다.



퇴사하고 난 뒤에도 가끔 일 때문에 회사에 간다.

임직원 대상 강의를 한다.

작년에 퇴사하고 2년 간 진행했다.

올해까지 강의하고 내년부터는 오지 말라고 한다.

1년에 몇 번 없는 강의지만 아쉽기는 하다.


내가 강의를 설계하고 만든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때가 됐나 보다.




내가 만들었다는 생각에 내 것인 줄 알았나 보다.

아무리 맛있는 커피도 다 마시고 나면 종이컵은 필요 없는 것이 돼버린다.

어쩌면 맛있는 커피에 남은 미련처럼 난 계속 빈 컵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전에는 이 종이컵에 내가 만든 커피가 담겨있었는데 정말 맛있었어. 그렇게 맛있는 커피가 있던 이 빈 컵을 봐봐.

정말 대단하지 않아?"


빈 컵을 들고 다니면서 이미 다 마셔버린 커피를 자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거를 회상하는 빈 컵을 들고 다니느라 컵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커피를 시킬 수도 없고 누가 전해주는 커피잔을 받을 손도 없었다.

이미 텅텅 비어버린 종이컵 때문에 더 맛있는 커피를 맛 볼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카페를 나왔기 때문에 리필도 되지 않는다.



맛있던 커피가 담겨있던 종이컵을 버려야 할 때이다.

새로운 커피를 잡을 수 있게 손을 비워놔야 한다.


새로운 카페를 찾아 다양한 커피를 맛볼 때다.

빈 종이컵은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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