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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신 Mar 09. 2020

자율 격리

집안에 고립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 자율 격리 중이다.

자가 격리도 아니고 자율 격리를 하고 있다.

사실 나갈 곳이 없다.

회사는 2월 초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물론 회사가 집에서 걸어서 5분이지만 그래도 재택근무를 한다.

사람들 만나기로 한 회의는 모두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가장 힘든 것은 2월과 3월에 예정되어 있던 강의가 모두 취소 또는 연기된 것이다.

강의가 없으면 수입도 많이 줄어든다.

집에만 있기 때문에 돈 쓸 일도 없지만 그래도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을 줄일 수는 없다.

어쨌든 이런 시기에 강의가 줄어든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갑자기 21세기가 된 것 같고 뭔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바뀐 것 같다.

회사 회의는 스카이프를 활용하여 원격 화상 회의로 진행한다.

그 전에도 가끔 재택근무를 해서 그런지 재택근무하는 것은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편안하게 만나서 진행하는 회의가 왠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회의가 된 것 같아서

업무 얘기만 진행하고 있어서인지 딱딱해진 것 같기는 하다.

사무실에 있으면 함께 점심도 먹고 차 한잔하면서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런 시간은 아쉽다.

그래도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에 재택근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것보다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을 신문기사로 접한다.

각각 업무 특성에 맞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데 미처 준비가 되지 못 한 환경에서 갑자기 집에서 근무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집에서 일하는 것이 집중이 잘되고 효율이 올라간다.

집에서 일하면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지 않아 힘들다고 하는데 어차피 집에 혼자 있으니 출퇴근 시간이 크게 의미는 없다.


집에 혼자 있으니 여러 생각을 하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있다.

긍정적인 면을 우선 생각하려고 한다.


사람들과의 식사자리도 모두 취소되고 약속을 아예 잡지 못하고 있다.

가끔은 한 번씩 얼굴 보면서 얘기도 해야 하는데 혼자 집에 있으니 반대로 그동안 꼭 필요하지 않은 모임도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필요하면 전화를 하면서 얘기를 할 수 있으니 굳이 만날 필요도 없다.

사실 만나면 10분 정도 반가움을 표시하고 이후에 여러 얘기들을 나누다가 술 한잔 하고 한잔 더하다가 보면 많은 시간이 지나간다.

이런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할 얘기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이전에도 한 잔 생각나면 집에서 혼술 하는 경험이 있어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집에 혼자 스스로 격리되어 있으니 괜히 요리를 많이 하게 된다.

물론 내가 만든 요리 대부분이 안주이기 때문에 술을 함께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혼자 마시기 때문에 딱 마실만큼만 마실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소고기 뭇국을 끓여서 5일 동안 계속 뭇국에 밥 말아먹고, 꽁치도 해 먹고, 햄도 구워 먹고, 소시지도 먹고, 비 오는 날은 호박전도 해 먹었다.

콩치 토마토 조림?

토마토 먹으면 살 빠진다고 해서 토마토를 먹었지만 살도 빠지지 않았다.

시리얼을 먹으면 살 빠진다고 했지만 시리얼 한통은 몇 인분인지 몰라서 5번에 끝나버린다.

토마토를 먹어도 살이 안빠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자율 격리로 인한 불편함은 먹는 것도 아니고 재택근무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강의가 취소되는 것인데 대학 강의는 영상으로 대체해달라고 한다.


강의는 직접 가서 하는 것이 상당히 편하다. 교육생들과 공감도 하고 질문도 하고 가끔은 농담도 하면서 같이 웃는 것이 강의하는 맛이다.

3시간짜리 강의를 집에서 녹음했다.

일단 교재를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원래 교재는 사진이나 그림만 있고 말로 설명을 했는데 녹화하려고 하니깐 교재가 부실해 보여서 대사를 교재에 더 추가시켰다.

소리를 녹음하고 자료와 함께 보여주는 방식이다.

다행히 목소리만 들어가서 집에서 대충 입고 열심히 떠들어볼 수 있었다.

물론 강의 내용을 원고로 작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강의를 녹음해야 했다.


교재를 노트북에서 보면서 앉아서 녹음을 해 보았는데 목소리는 정말 차분하여 내가 들어보다가 졸릴 정도였다.

다시 원래대로 하는 식으로 녹음을 해서 한 번에 한 시간을 강의하듯이 하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별로 재미가 없다.

역시 관중이 있어야지 쑈는 재미있어지나 보다.

녹음을 하기 때문에 많은 개그가 생략되어진다.


내 강의는 개그가 있어야지 재미있는데 그런 부분이 없어지니깐 상당히 전문적이고 지루하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이번 교육생들에게 미안하다.

이것은 마치 작년에 출간한 문제가 문제다를 보는 것과 같다.

브런치에 쓴 초안은 재미있다고 하는데 책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개그가 생략되고 나니 내가 읽어도 전문가가 쓴 것같이 재미없어졌다.

어렵다고 하는 책

오늘 3시간 분량을 녹음했는데 실제 녹음 시간은 2시간 20분밖에 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30분 넘게 개그를 했나 보다.


4월이 되면 강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이런 식이면 굳이 수도권에 살 필요가 없이 전국을 떠돌며 사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

강의는 이렇게 해야되는데

변화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스스로 변하기 어려우면 환경이 변하고 적응해야 한다.

어쩌면 이런 시기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 생각한다.

모든 것이 원격으로 이루어지고 이메일과 문자로 진행될 수 있지만 아직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나서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고 돈이 아까울 수도 있겠지만 시간과 돈 보다 소중한 무엇이 있기에 사람과 만나서 따스함을 느끼고 싶다.


집에 있으니 많은 것을 정리한다. 포기하는 것도 있고 내려놓는 것도 있다.

집에서 보는 창밖 풍경은 봄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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