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일정한 간극 속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던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났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정신이 없었다. 보지 못했던 지난 시간 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고, 슬프게도 그 일을 잘 모르고 있었다. 친구는 내 말에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올 뻔하는 걸 참으려 애쓰고 있었다. 친구는 왜 그러냐며, 이제 다 지난 일이며 해결을 했으니 앞으로 괜찮을 것이라 했다.
친구는 나를 향해 웃었고 나는 그런 친구의 손을 바라보았다. 얼핏 보이는 작은 상처들은 고난했던 일을 상기시켰다. 나는 친구에게 손은 아프지 않으냐고 물었다. 친구는 여지없이, 하지만 약간의 슬픈 얼굴을 하곤 손의 상처를 감쌌다. 이제 괜찮지. 옛날에는 이 손으로 피아노도 치고, 예쁘다는 말도 들었는데 이제는 그러기 힘들겠어.라고 했다.
그제야 친구가 피아노를 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는 종종 학교 강당에 있는 피아노를 치곤 했다. 친구는 칠 줄 아는 곡이라곤 몇 개 없다고 부끄러워했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나는 친구가 치는 피아노 곡이 좋았고, 그 순간만큼은 그냥 아무 말 없이 강당에 앉아있는 순간이 행복했으니까.
나는 친구에게 그때 연주했던 곡이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이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연주를 안 한 지도 벌써 십 년이 넘게 흘렀으니 아마 피아노가 있다고 하더라도 건반을 누를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아쉽다. 하고 짧게 한숨을 지으며 나는 아직 그때의 순간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향하고 우리만이 교실에 있게 되었을 때 몰래 강당으로 가 피아노를 향해 손을 올리던 친구의 모습, 창을 향해 들어오던 노을의 적당한 빛과 온기, 문 틈으로 들어오던 약간의 바람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에 의해 온갖 소음이 섞여 있던 강당의 찾아온 고요가, 친구의 피아노 연주로 물들 때 나는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친구는 그저 웃고 있었다. 자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너는 여전히 기억력이 좋다며 신기해했다. 그러고는 그때의 우리가 참 행복했구나, 하고 말했다. 그때의 우리. 생각해 보면 그때의 우리도 불안한 미래, 성적 같은 것 따위에 깊은 고민을 했을 터였다. 그런 성적의 압박감을 못 이기고 친구와 몰래 강당에 가 쉬곤 했었으니까. 다만, 그때의 우리는 결코 10년의 시간 동안 우리가 이런 일을 겪게 될 것이란 건 알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된 걸까. 그때의 우리는 다른 아이들처럼 적당히 공부를 했고 목표로 하던 대학교에 입학까지 성공했으니, 적어도 괜찮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는 취기가 오르는지 술을 더 마시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기는 이만 돌아가봐야겠다고, 너무 늦으면 집으로 가는 길이 무섭다고 했다. 나는 집에 조심히 들어가라고 했다. 친구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괜찮을까, 집에 잘 갈 수 있을까, 택시를 태워서 보내야 할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친구는 모든 힘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집을 향해, 아무도 없지만 곧 아늑해질 그곳을 향해.
친구는 떠나기 전 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고 물었다.
지금껏 우리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의 길을 걷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더 나은 방향을 향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았음을 깨달았으니, 아마 앞으로의 선택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나의 말에 친구는 그렇겠지. 하고 돌아섰다. 친구는 잘 지내라고 말하며 멀어져 갔다. 친구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오로지 속으로 너의 하루가 안녕하기를, 하고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