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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Nov 14. 2021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본 팀워크

HR의 관점에서

이 영화의 스토리가 많이 회자될 때는 몰랐으나 다시 보니 왜 과거의 기억과 조금은 다른지 참 낯설다. 과거엔, 멋지게 자신의 꿈을 찾은 여성으로 기억했는데 지금의 느낌은 다르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맞다. 다만 지금은 조직에서 시니어가 되었으니, 받아들이는 내 위치나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나 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보통의 직장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오너는 따로 있는 전문경영인 대표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비서실 직원으로 앤드리아(앤 해서웨이)라는 대리 직급의 직원이 입사했다. 우여곡절을 겪는 대리 앤드리아는, 어느 날 미란다 대표의 지시로 새로운 일을 맡았다가 그 일을 잘하게 되면서 미란다의 눈에 띄어 결국 위의 선배들을 제치며 승승장구한다. 회사 안의 동료와의 경쟁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겪는 성장 스토리쯤 되겠다.




영화를 마치며 주인공의 성공이 남을 짓밟으면서까지 앞서는 욕심은 아닌 것과 과정에서의 변명은 있겠지만 결국 어디서나 선택은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느꼈다. 선택이 결국,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느낀 배경은 다음과 같다. 미란다가 (파리 패션쇼에 가기 위해 모든 걸 갈아 넣은)에밀리 대신 파리 패션쇼에 앤드리아를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앤드리아는 고민을 하지만 결국 본인이 가기로 한다. 만약, 조직 안에서 업무를 하던 중 선택지가 둘 뿐인 상황에서 하나는 내게 성공을 주지만 하나는 실패를 주는 선택지라면 당당히 실패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을까? 아마도 실패보다는 성공을 선택할 것이다. 앤드리아도 선택지 중 성공에 가까운 것을 택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변명은 있지만 결국, 미란다와 같이 누군가의 간절한 목표를 알았음에도 함께 묵묵히 일해 온 동료보다 '자신'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2개의 선택지만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또한 조직은 선택을 두고 길게 고민할 시간을 애초 구성원에게 주지 않는다.



조직의 성장을 위해 구성원이 성과를 좇아야 하는 것은 맞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회사의 기준에 나를 맞추며 갈 것인지 회사의 기준은 있되 나의 신념과 밀당하며 도모할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다. 다만, 모든 선택을 눈앞의 단기적 목표만 바라보고 선택하면 정작 이루고 싶은 목적은 더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적어도 조직에서의 무수히 많은 구성원 중, 나 하나만을 위한 선택은 좀 피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그런 상황이 진짜 온다면 나는 과연 의연하고 담대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영화에서 앤드리아가 선택되지 못한 나이젤과 나눈 대화는 앤드리아에게 많은 생각을 주었다.


   나이젤     : 언젠가 내게도 보상이 있겠지

   안드리아 : 확신해?

   나이젤     :... 믿고 싶어..


그리고 결말쯤 차 안에서 나눈 미란다와의 대화에서 드리아는, 본인의 성공이 미란다와 다름을 느꼈다. 그리고 누군가의 열정을 나의 성공을 위해 이용하는 것, 날 위한 선택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는 것을 미란다에게 알려주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미란다가 말하는 성공을 무시하고 실망을 안겨주었다.

*출처 : 픽사베이


이 영화는, 조직에서 시니어가 된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조직, 팀에서 너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말이다. 팀은 경쟁도 필요하지만 협력과  협업에서 공정한 경쟁이 발생되었을 때, 진정 팀으로서의 시너지가 발생된다. 나 혼자 잘났어도 그것은 조직의 자원으로 내가 이루어 낸 것이지, 온전한 나만의 것으로 이뤄낸 성과는 극히 일부분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가치는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혼자 잘 살기 위한 선택지는 아니다. 함께 잘 살기 위한 지향 없이는 평생 8만시간 이상 머무는 회사를 우리는 늘 전쟁터라 여기며 싸워 이기는 것만이 목표일테고 싸워서 이긴다는 것에 각자의 열정과 노력을 갈아 넣을 수 밖에 없다.



왜 악마는 프라다를 입을까?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악마처럼 검정이나 빨강의 옷을 입고 표독한 표정의  악마라면, 모두 부정적인 이미지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프라다를 입는 악마의 모습은, 왠지 한편으로 닮아가고 싶고 저렇게 나빠도 그 정도의 부와 명성을 이룬다면 괜찮지 않을까란 타협을 하게 한다. 경쟁이란 것이 어쩔 수 없음을. 그 부분에서 무엇이든 겉보기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만 결국, 어떤 모습이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란 얘기일 것이다. 여러 달콤한 유혹의 연속에서 우리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무슨 가치를 더 추구해야 하는지 시험당하고 있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아직도 마음 한편에는 '사필귀정'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감당할 만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에서 팀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팀으로 일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드리아는 미란다를 같은 팀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미란다가 나이젤을 배신한 것을 보고 본인도 그랬지만  더 이상 우리가 같은 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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