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사명이 바뀌고, Founder 가 사라지고 새 주인(M&A)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망하지 않고 지속되는 기업의 영속성도 조직을 둘러싼 환경에 변화하며 적응한 결과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학습민첩성을 이런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학습 방법으로 제시한다. 그 말에 이견은 없다.
고도화된 지식사회에선,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존에 내가 배운 지식이나 경험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지 않다. 그 안에 둘러싼 많은 이해관계를 토대로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부터 해결하는 방법도 한 가지의 시선이 아닌, 여러 시선이 필요한데 특히 요즘은 '올바른 사회적 시선'도 함께 필요하다.그래서 학습민첩성은 상당히 유의미하나 너무 방법에만 치중되어 생각하기 쉽다. 유연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구성원의 '학습'이 '민첩'해야 함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럼, 유연한 환경이 아니면 학습의 민첩성은 없어도 되는 것일까? 또는 과거에는 학습민첩성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출처 : 픽사베이
학습은 결국, 행동이다. 즉, 경험을 통해 학습하기 때문에 학습에 있어 민첩함은 자신의 학습의 방법을 잘 알고, 내가 어떤 방식에 의해 잘 몰입되며 동기 부여되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그리고 알고 난 후에 바로 실행에 옮겨 학습하는 것이 민첩한 학습이다.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건 학습이 아니다. 작심삼일처럼 삼일 만에 끝난다. 그리고 생각만 하고 어떤 방식이 자신에게 맞는지 모른 체하라는 대로 하는 학습 또한 학습이 아니다. 교육의 주체는 자신이 아닐 수 있지만, 학습의 주체는 자신이다. 그래서 학습민첩성을 개발한다치고 새로운 기술, 인문학, 예술, 공학, 코딩을 가르쳐 봐야 소용이 없다.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학습 동기로만 따지자면 대표이사들이 제일 많이 배워야 하고 익혀야 하는데 정작 구성원만 학습을 시킨다. 학습을 하도록 하. 는. 게 아니다, 시. 킨. 다. 그리 한들 배우긴 해도 익히지 못한다. 민첩성의 단어보다 학습에 더 방점을 두어야 한다. 뭐든지 기본적인 학습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다음의 단계로 가지 못한다.
학습민첩성은 속도가 아니다. 그리고 학습의 방향이 정해지면 속도의 조절, 조정이 가능할뿐이다.
민첩성과 같이 어미에 '성(性)' 이 붙는 것은사람이 지닌 고유한 특성, 즉 본바탕이다. 결국, 민첩하다는 것은 재빠르고 날쌤이 그 사람의 고유의 특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될 수 있도록 익히게 만들어 주거나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거나 익힐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보상해 주어야 한다. 지속적인 개발과 촉진인 셈이다. 그렇게 해야 민첩성을 갖추게 된다. 늘 논점이 되었던 '왜, 사람에 따라 더 빠르고 유연하게 학습하는지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결국 개개인의 차를 극복할 수 있는 동기와 실행을 갖추도록 해야만이 학습 민첩성이 길러지기에, 지금 우리의 HRD가 민첩성을 위해 무엇에 중점을 두는지 찾아보자. 집체 교육을 대신하기 위해 시도하는 기술, 매체, 도서 등을 활용하는 방법은 교수법의 하나일 뿐이지 민첩성을 길러주는 대안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동기를 가지고 학습한 것이 '수행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익히는데 초점을 두자.
학습민첩성은 빠르고 유연하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습 전후로 민첩함을 기르기 위한 준비가 된 후 행동으로 옮겨 실행하는 것까지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과정 설계에 너무 조급해 말자. 어디서나 학습이 가능하고 많은 학습 도구와 교재, 영상이 넘쳐흐르는 요즘, 계기를 동기로 배움을 익힘으로 만들어주는 교육담당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Zoom' 하나를 제대로 배우기 꺼려하는 변화에 방어적이고 저항이 깊은 구성원들을 제대로 포용하여 학습의 계기를 만들고 하나를 배워도 제대로, 정확히, 익히도록 말이다. 또한 구성원들의 학습 목적이 성과, 승진, 직무, 경력에 필요하기 때문에 배우려 해도 그 의도가 나쁜 것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