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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Aug 31. 2022

일을 통해 사람을 보는 것

#피터의원리를상기하자

어제, 오늘 일하면서 엄청 바빴다. 오늘 내가 정해놓은 루틴의 일은 없었지만 상사의 질문에 답하느라 에너지가 소모되고 도대체 무엇을 알기 위함인지 모르는 질문의 정체에 더 답답해 했다. 지식을 알고 싶으면 독학을 하고 묻던가, 아니라면 본인(상사)의 개인적 판단은 좀 내용을 다 듣고 난 후 한 번에 해도 되지 않나? 나의 의견에 의심만 품을 거면서 왜 간을 보는지.. 이런저런 생각에, 피터의 원리를 부마다 분류하며 글을 읽고 썼지만 현실은 피터의원리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 현실도 피터의원리와 같다. 나는 리더나 관리자(또는 선배)의 상(象)으로 온전한, 완벽한 리더가 있다고 믿은 것일까? 불현듯 오늘 나의 상사(선배)를 보며, 저 나이쯤 되면 나도 저렇게 변해 있을까 무서워 졌다. 그리고 답답함에 눈물이 날 뻔!했다. (비단 리더나 선배의 원인은 아닐 수 있다. 짜증이나 화의 원인을 현상과 섞여 생각하고 있어서 그렇지 원인이 아닐 수도, 혹은 다른 원인일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그래,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일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사람을 통해 일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더 얽힌다. 일에 감정이 들어가는 것이다. 대부분 나의 감정이 더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일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감정에 집중해 일을 망치기도 했던 것 같다. 래서 일을 같이 하는 사람의 능력이 기대보다 실망이 크게 되면, 멋대로 상대를 평가한다. 평가가 나쁜건 아니지만, 감정에 얽매인 평가는 감정 해소의 수단(뒷담화, 또는 요오옥..)이지 평가는 아니었다.



실망과 기대 사이를 오가는 것보다 일로써 사람을 보고 사람을 통해 나온 결과로 다시 일을 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전전글에서도 말했지만 마음은 알 수 없으니 행동만 보는 것이다. 일을 할 때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리더를, 동료를 다그치거나 가르칠 수 없다. 그럼, 일로만 보면서 우리의 일이 더 나아지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대한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리더 중 속된 말로 일을 짜치게 만드는 분도 있지만 그건 결정권자인 그 사람의 책임이다. 나의 책임이 아니다.


다만, 그 사이에 '나'라는 변수나 장애 요인은 없었는지도 같이 보아야 한다.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다 보면 목표를 수정할 때가 오는데 결국은 나의 미루기병, 귀찮음, 타협이 원인일 때가 더 많다. 그럼 일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변수나 장애도 있지만 '나'라는 변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도 문제일 수가 있다.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왜 일을 통해 사람을 봐야 하는지 분명하게 느끼게 다. 목표 달성에서 중요한 것은 계획도 중요하지만 달성 과정에서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팀과 팀간의 대화, 동료간의 대화를 통해 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로봇이 없는 우리 회사에서는, 사람이 가장 큰 장애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없는대도 일이 잘 되지 않는다면 내가 장애였던 것이 아닐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빨리빨리'를 입버릇처럼 속도로만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지, 나한테 일을 맞추면서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소모시키지 않는지, 나도 나에게 일을 잘 시키는 사람인지. 이런 생각과 태도로 일을 대하고 반복하는 이, 내가 무능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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