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해변의 선베드 vs 1분 단위 유럽 투어코스
영국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주말을 끼고 2박 3일 파리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완벽한 ‘프로젝트형 가족’이었던 우리는 비싼 비행기표 값이 아깝지 않게, 눈으로도 발바닥으로도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아침 6시 30분, 가차 없이 알람이 울리면 15분 만에 크루아상으로 조식을 삼켰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오늘의 미션을 확인했다. 루브르를 3시간 만에 주파하고, 몽마르트르 언덕과 퐁네프 다리를 거쳐, 구글맵에 별표 쳐 둔 마레 지구의 맛집을 섭렵한 뒤, 에펠탑 야경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코스. 우리는 매일 그 무자비한 행군을 소화하며 하루 2만 보 이상을 걸었다.
가성비 좋은 ‘생산적인 휴가’를 보내야만 이번 여행이 성공이라는 묘한 강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 에펠탑이 정면으로 보이는 노천카페에 주저앉았을 때조차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카페에서 나는 밀푀유를 반쯤 잘라 입에 넣었다. 달콤해야 할 크림이 이상하게도 혀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발목은 욱신거렸고, 손바닥은 자꾸 땀이 났다. 테이블 아래에서 발끝이 가만히 있지 못했다. 내 눈은 디저트가 아니라 연신 휴대폰 화면을 훑고 있었다. 지도 앱의 ‘다음 목적지’가 빨리 오라며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여기 앉아 있는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지연이었다. 나는 쉬는 사람이 아니라 잠깐 멈춘 헹군 자였다.
그렇게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매일 다음 행선지를 향해 일어서던 우리의 여행은, 집에 돌아와 “아이고, 피곤해. 하루만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고 싶다”는 말로 끝났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한 또 다른 휴식을 갈망하는, 기막힌 아이러니였다.
그 무렵이었다. 영국 이웃들 사이에는 휴가를 떠날 때 서로의 화초나 정원을 돌봐주는 소박한 품앗이 문화가 있다. 옆집에 살던 클로이(Chloe) 가족도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운다며 내게 뒷마당 열쇠를 건네왔다. 어디로 가냐고 묻자, 스페인 남부 말라가(Málaga)의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 해변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말라가? 거긴 다 돌아볼 텐데….. 일주일씩이 나요?"
클로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관광지라뇨. 우린 그냥 바닷가 모래 위에 누워 아무것도 안 하고 쉬다 올 거예요.”
처음 영국 가족들이 스페인이나 그리스로 일주일씩 휴가를 가서 보내는 ‘일과’를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일주일 내내 호텔 수영장이나 해변의 같은 선베드에 누워, 벽돌처럼 두꺼운 페이퍼백 소설을 읽다가,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를 마시고, 졸리면 자고, 더우면 물속에 뛰어드는 게 전부라니. 그 비싼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와서, 유명한 풍경들을 눈앞에 두고도 ‘그냥 누워 있다’니.
그런데 휴가를 마치고 까맣게 그을려 돌아온 그들의 얼굴은, 내가 파리에서 돌아왔을 때와는 달랐다. 그 얼굴에는 ‘다녀왔다’가 아니라 ‘풀렸다’가 적혀 있었다. 어깨가 내려와 있었고, 말의 속도가 느렸고, 웃음이 가벼웠다.
한국인에게 여행이 ‘최대 효율을 뽑아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면, 영국인에게 휴가(Holiday)는 ‘아무것도 안 하기(Do Nothing)를 위한 권리’에 가까웠다. 쉬는 시간조차 떳떳하게 허락받는 문화. 그게 내겐 낯설었다.
우리는 왜 여행을 가서도 피곤하게 걷고 또 걷는 걸까.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여기까지 왔으니 랜드마크 사진 몇 장쯤은 남겨야 ‘나 잘 쉬었다’고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압박감. 체크리스트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지 않으면 내 시간마저 텅 빈 것처럼 불안해지는 마음. 남들이 다 가는 곳을 나만 놓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FOMO)까지.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쉼은 종종 ‘가치 있는 결과’를 내야만 인정받는 행위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쉬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온전히 ‘쉬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아본 적이 없는 건 아닐까.
게다가 우리는 오래 ‘표준화된 여행’을 배워왔다. 예전엔 단체 패키지가 일정표를 쥐고 있었다면, 요즘은 지도 앱과 알고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별표를 찍고, 저장을 하고, 추천 리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여행은 어느새 내 것이 아니라 ‘검증된 루트’가 된다. 자유여행을 하면서도 나는 계속 누군가의 가이드를 따라가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 한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한 달 살기’ 같은 흐름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살아오다 보니, 번아웃에 빠진 사람들이 뒤늦게 극단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쉼이 권리가 아니라 처방전처럼 소비되는 시대. 우리는 너무 오래 ‘전원을 끄는 법’을 잊고 살았다.
어느 해 여름, 나는 큰맘 먹고 영국인들처럼 선베드에 하루 종일 누워 ‘아무것도 안 하기’를 시도해 보았다. 처음 한두 시간은 불안이 몸으로 올라왔다. 다리가 근질근질했고, 손은 자꾸 휴대폰을 찾았고, 자세는 계속 바뀌었다. ‘이 귀한 시간에 내가 진짜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하는 조바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아주 이상한 일을 했다. 호텔 룸으로 올라가 달력을 펼쳐 놓고, 그날 날짜에 동그라미를 쳤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할 일 대신, 하지 않을 일을 표시해 두는 동그라미.
반나절이 지나고 해가 기울어갈 즈음, 비로소 머릿속 엔진이 서서히 꺼지는 걸 느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뜨거운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놓아도 되는 시간’이 내 몸 안에 들어왔다.
그때 깨달았다. 휴식이란 새로운 자극과 풍경으로 눈을 꽉 채우는 것이 아니라, 팽팽하게 당겨진 마음의 끈을 기꺼이 툭, 놓아버리는 ‘비움’의 과정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려 했던 게 아니라, 세상이 잠시 나를 놓아주길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휴가에는 나도 일정표와 구글맵 대신, 두꺼운 소설책 한 권과 선크림만 가방에 챙겨 떠날 것이다. 선베드 위에서 기꺼이, 완벽하고 눈부시게 ‘비생산적인’ 시간을 낭비하기 위하여. 사진 대신, 내 안의 소음이 줄어드는 고요한 시간을 듬뿍 남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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