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평수, 그리고 호캉스의 아이러니

우리는 왜 내 집을 두고 남의 건물로 도망쳐야 쉴 수 있을까

by 양수경


요즘 사람들은 아파트 평수를 숫자로 말한다. 18평, 32평, 42평. 숫자는 곧 삶의 크기이자 성공의 척도가 된다. 우리는 조금 더 넓은 거실을 위해, 조금 더 높은 층의 뷰를 위해, 그리고 조금 더 ‘좋은 동네’라는 타이틀을 위해 기꺼이 거액의 대출을 어깨에 짊어지고 몇십 년을 쳇바퀴 돌듯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는 기막힌 모순이 하나 있다. 그렇게 청춘을 바쳐 넓은 집을 사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우리는 진짜 휴식을 위해 기어코 내 집을 떠난다. 그리고 가장 작은 호텔 방을 예약한다. 킹사이즈 침대 하나, 창너머로 보이는 수영장, 그리고 남이 차려주는 조식 뷔페 한 번. 우리는 그것을 ‘호캉스(Hotel+Vacance)’라 부르며 열광한다.



수억 원을 주고 산 내 집의 넓은 소파에서는 좀처럼 쉬지 못하면서, 하루치 카드 결제 영수증만 남는 타인의 건물 안에서는 비로소 완벽하게 늘어진다. 내 이름으로 등기된 공간에서는 끊임없이 긴장하던 몸이, 내 소유가 아닌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팽팽했던 줄이 끊어지듯 느슨해지는 것이다. 대체 이 아이러니는 어디서 오는 걸까.


어릴 적부터 부모님 세대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이 있다.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해. 빚을 내서라도 무조건 내 집부터 장만해야 어른이 되는 거다." 집은 험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가장 안전한 요새이자, 인생의 든든한 닻이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 가르침에 충실했다.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인간이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탐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갈 수 있는 ‘안전 기지(Secure base)’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품이 그 역할을 하지만, 성인에게는 ‘집’이 바로 그 안전 기지가 된다. 내 집 안에서는 방어벽을 세울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을 계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이르러 집은 고유한 쉼의 장소를 넘어,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지'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소유하면 완벽한 안정을 얻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집을 지키고 빚을 갚느라 더 큰 불안에 시달린다. 환경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진짜 안정감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소유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내 삶에 대한 '예측 가능성',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통제감', 그리고 '관계적 안정감'이 동시에 충족될 때 비로소 진짜 평온이 찾아온다.



영국 런던에 정착해 몇 년의 고생 끝에 처음으로 뒤쪽에 조그마한 가든(Garden)이 딸린 영국의 전통적인 세미디태치드 하우스(Semi-detached house, 두 가구가 벽을 공유하는 형태의 주택)를 샀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 이름이 적힌 집문서와 묵직한 열쇠를 손에 쥐던 날, 나는 벅찬 가슴으로 생각했다. ‘아, 드디어 이 낯선 타국 땅에 내 진짜 뿌리가 깊게 내렸구나.’


하지만 그 뿌리의 안정감은 곧 무거운 족쇄로 얼굴을 바꾸었다. 내 이름으로 등기된 집이라는 것은, 그 순간부터 내가 짊어져야 할 거대한 '책임의 세계'가 열렸음을 의미했다. 매달 통장에서 무섭게 빠져나가는 25년짜리 모기지(주택담보대출)의 무게는 내 삶의 궤적을 좁고 단단하게 묶어버렸다.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쉬는 대신, 낡은 영국의 집을 유지하기 위해 페인트 통을 들고, 삐걱거리는 문짝을 고치고, 잡초가 무성해지는 가든을 관리하는 끝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안전한 요새인 줄 알았던 집은 어느새 나의 시간과 체력, 그리고 통장을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상전’이 되어 있었다. 집을 소유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집에 완벽하게 소유당해 버린 것이다. 내 공간에 대한 '통제감'을 잃어버린 셈이다.



우리가 내 집을 놔두고 호캉스로 도망치는 이유는 명백하다. 호텔 방에는 ‘나의 소유’가 없기 때문이다. 호텔의 새하얀 침대 시트와 반짝이는 욕실 앞에서는 모기지 이자를 걱정할 필요도, 고장 난 수전을 낑낑대며 내 손으로 고쳐야 할 의무도 없다. 그곳은 철저히 내 소유가 아니기에, 역설적으로 나를 어떤 책임감으로도 짓누르지 않는다. 우리는 호텔 방이라는 그 작고 낯선 공간에서 ‘소유하지 않음의 해방감’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유의 무게에서 벗어날 때 가장 완벽한 쉼을 얻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으로 된 무거운 벽돌을 갖기 위해 평생을 바치면서도, 끊임없이 짐을 싸서 홀가분하게 떠나기를 갈망하는 이 지독한 모순.


텅 빈 호텔 방의 창밖을 내려다보며 나는 문득, 오래전 이집트의 뜨거운 사막에서 만났던 어느 사람들을 떠올렸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천막 하나를 집이라 부르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장 가벼운 짐을 메고 평생을 여행하듯 살아가던 베두인들. 내가 런던의 시멘트 벽돌과 대출금의 무게에 짓눌려 헐떡일 때,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토록 가볍고 흔들림 없는 눈빛을 가질 수 있었던 걸까.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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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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