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막에서 배운 소유와 정착의 의미
우리 일행은 이집트 아스완 댐 근처의 '누비안 마을(Nubian Village)'에 도착했다. 2005년 8월, 숨이 턱 막히던 열기 속에 처음 왔던 그곳을 오랜 세월이 흘러 두 번째로 찾은 것이다.
나일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그 거대한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아선 콘크리트 장벽 아래에서 마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다. 1960년대 아스완 하이 댐 건설 당시, 수몰 위기에 처한 것은 고대 유적과 사람들의 고향이었다.
그때 전 세계는 유네스코(UNESCO)를 통해 막대한 기금을 모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아부심벨 신전 같은 거대한 ‘돌덩이’들을 고지대로 끌어올려 살려냈다. 하지만 정작 수천 년을 나일강 변에서 살아온 5만 명이 넘는 누비아 사람들의 터전은 속절없이 물아래로 가라앉게 내버려 두었다. 세상은 웅장하고 무거운 건축물은 구원했지만, 정작 그곳에 깃들어 살던 사람들의 삶은 구하지 않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고 척박한 모래땅으로 쫓겨나듯 이주해야 했던 사람들은, 팍팍한 시멘트 집의 외벽을 알록달록한 파란색, 노란색, 분홍빛으로 칠했다. 지금은 전 세계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이국적인 풍경이 되었지만, 그 화려한 색채 아래에는 수몰된 고향을 향한 묵직한 상실감이 서늘하게 눌려 있다.
그 상실의 땅에서 나는 사막 깊은 곳, 바하리야 사막과 시나이반도를 떠돌며 양과 낙타를 치는 유목민 베두인(Bedouin)의 삶을 떠올려 본다. 성경 속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같은 족장들 역시 장막(텐트)을 치고 계절과 우물을 찾아 이동하던 유목민이었다. 이들의 삶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베두인의 문화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역사적으로 이집트의 베두인들이 한 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무함마드 알리 왕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를 통제하려던 정부는 유목민들의 이동을 막기 위해 농경지를 나누어주며 ‘정착’을 강요했다. 나일강 상류의 교역과 군사적 필요에 의해 하나둘 마을이 형성되었지만, 그들에게 정착이란 국가와 시대가 강요한 ‘선택’이었을 뿐 결코 그들의 ‘본능’은 아니었다.
사막에 덩그러니 세워진 그들의 가벼운 텐트 앞에 섰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숨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기둥 몇 개와 밧줄, 그리고 모래 위에 내려앉은 그림자 하나가 전부인 천으로 된 집. 그 한없이 가벼운 텐트 앞에서 나는 문득 나의 무겁고 뻣뻣한 삶을 조용히 돌아보았다.
우리는 내 몸 하나 누일 시멘트 공간을 ‘내 이름’으로 소유하기 위해 평생을 쉼 없이 달려간다. 집을 벽돌로 단단히 고정시킨 대가로, 우리는 평생 그 벽돌이 얹어준 은행 대출금과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 그리고 욕망이라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유목민에게 고향의 개념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베두인이나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에게 고향은 지도 위에 찍힌 고정된 ‘점(Point)’이 아니라, 계절을 따라 이어지는 긴 ‘길(Path)’에 가깝다. 양 떼가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낙타가 오래 걸을 수 있는 곳이 곧 그들의 고향이다. 비가 오고 풀이 자라면 그곳에 텐트를 치고 집을 삼는다. 그러다 풀이 마르고 땅이 지칠 때쯤이면, 그들은 땅이 스스로 회복할 시간을 주도록 미련 없이 자리를 비워준다.
그들에게 땅은 영원히 움켜쥐어야 할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과 신이 잠시 내어준 ‘선물’이다. 선물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누리는 것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돌 몇 개를 쌓아 작은 무덤을 만들고 바람의 방향과 별자리를 이정표 삼아 미련 없이 길을 떠난다. 하지만 다음 계절이 오면 그들은 어김없이 그 길로 다시 돌아온다. 머물다 떠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대한 생명의 순환. 필요를 채워주고 기꺼이 자리를 비워주는 것, 그것이 유목민이 자연과 맺는 관계이자 고향의 진짜 의미다.
유목민에게 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언제든 접었다 펼 수 있는 텐트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아침이 오면 자리가 바뀌기에, 그들에게 필요 이상의 소유물은 생존을 위협하는 버거운 짐이 될 뿐이다. 인류가 집을 벽돌로 단단히 고정시키면서부터 우리는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안락함을 얻었지만, 그 고정된 욕심은 끝없는 고통의 시작이기도 했다.
하지만 쉼 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들에게도 절대 변하지 않고 ‘고정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함께 걷고 이동하는 ‘사람들(공동체)’이다. 같은 불을 쬐고, 같은 우물에서 물을 긷고, 같은 모래바람을 맞으며 걷는 부족. 그들의 집은 가벼운 천막이기에 비바람에 흔들리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끈끈한 관계 속에서 그들은 완벽한 안정감을 누린다.
반면 우리의 삶은 어떤가. 성냥갑 같은 튼튼한 콘크리트 벽돌 속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안전하다 믿지만, 이웃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우리는 지독한 고립과 불안에 시달린다.
나는 이집트의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진정한 안식처란 무거운 콘크리트 속에 있는 것이 아님을. 고정된 시멘트 벽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험한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의 체온이 우리를 단단하게 붙들어 준다는 것을.
바람에 펄럭이는 가벼운 천막 앞에서, 나는 조용히 내게 묻는다. 우리는 평생 집을 소유하려 발버둥 치다가, 결국 그 집에 완벽하게 소유당해 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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