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즐리 가든의 숨은 보석을 만나다.

반나절 짜리 여행

by 양수경


나는 이걸 여행이라고 부른다. 반나절짜리 여행.


여행은 멀리, 그것도 비행기를 타야만 시작되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잠깐 빠져나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의 이동. 나는 그것이 여행의 진짜 시작이라고 믿는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는 칼로 자른 것처럼 무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는 자신의 책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물리적인 이동 없이도 여행의 태도를 취하는 것을 ‘비(非) 여행’ 혹은 ‘탈(脫) 여행’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익숙한 일상에 작은 틈이 필요했다. 주일 말씀을 준비하다가, 아니 사실은 글을 쓰다가 숨이 턱 막혔다. 문장들은 제자리에서 뱅뱅 돌았고, 머리는 뜨거운데 마음은 차가웠다. 이런 날은 무언가가 나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커피 한 잔이나 집 근처 산책만으로는 모자랐다. 그저 아무 목적 없이, 걷고 또 걷는 ‘길’이 필요했다. 나는 레인코트만 걸치고 도망치듯 차 키를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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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엔 영국 특유의 비, 빗방울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안개 같은 물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A3 도로를 타고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위즐리 가든(Wisley Garden)'이었다. 영국에 살면서 "가깝다"는 말의 의미는 조금 변했다. 한국에서 20분은 그저 동네 마실이지만, 타국에서 마음이 움직여 떠나는 20분은 충분한 여행이 된다.


개찰구를 지나자 97헥타르(약 30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초록의 영토가 펼쳐졌다. 비에 젖은 잔디는 유리처럼 반짝였고, 오른쪽 경사면을 따라 단정한 테마 가든과 호수가 그림처럼 이어졌다. 평소의 나라면 중앙의 거대한 유리 온실(The Glasshouse)을 걷다가, 꽃길 끝에 있는 카페에 앉아 샐러드를 먹으며 '계절을 씹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숨을 고르는 익숙하고도 안전한 루트였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왠지 한 번도 가지 않은 왼쪽 언덕으로 발길을 꺾고 싶었다. 늘 지나치기만 했던 길 끝에서 작은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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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ld Laboratory]


클로징 타임 30분 전. 굳게 닫힌 문을 밀어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어떤 시간의 문 앞에 서서 '허락'을 구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잠시 서성이는 내게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Come in." 그 한마디는 나를 건물 안으로 들이기보다, 아주 오래된 시간의 안쪽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찰박, 찰박. 빗물이 묻은 신발 밑창 소리가 조용한 실내에 크게 울렸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었다. 1921년, 위즐리 원예 학교(Wisley School of Horticulture)의 첫 디렉터였던 프레더릭 '치티' 치튼던(Frederick ‘Chitty’ Chittenden)이 전문 가드너가 되기 위해 모인 신입생들에게 첫 개강 강의를 하던 역사적인 강의실이었다.


당시 위즐리 디플로마(Wisley Diploma)를 따기 위해 모인 학생들의 일과는 혹독했다. 그들은 필기와 실기 시험을 통과하고 에세이를 써야 했으며, 무려 200종이 넘는 식물과 곤충을 직접 채집해야만 했다. 낮에는 정원에서 흙을 파며 육체노동을 하고, 밤이 되어서야 남겨진 학업을 이어갔을 그들의 고단한 열정에 잠시 숨이 멎었다. 책상머리가 아닌 들판에서 흙을 만지며 치열하게 써 내려갔을 숭고한 '삶'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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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은 컸고 유리는 격자로 나뉘어 있었다. 밖은 여전히 젖은 잔디가 반짝이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데, 나는 실내의 낡은 앤틱 책상 앞에서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의자 위에 놓인 낡은 타자기, 검은 다이얼 전화기, 그리고 파일 바인더들이 줄 맞춰 서 있는 책장. 누군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와 "이거 어디까지 진행됐지?" 하고 물을 것만 같은, '정리된 과거'가 완벽하게 보존된 일의 자리였다.


나는 가벼운 초록을 보러 왔다가, 전쟁과 해충에 맞서 꽃을 지켜내려 했던 학자들과 가드너들의 치열했던 과거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그 오래된 타자기 앞에 선 순간, 내 안의 숨겨진 기억들이 마법처럼 몸으로 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딸깍, 딸깍, 찰칵. 타자기 키를 누르고 레버를 밀어 다음 줄로 넘어가던 그 묵직한 손의 리듬. 글자가 아니라 시간이 찍히던 그 소리가 닫혀 있던 그리움의 빗장을 툭, 하고 열어젖혔다.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아버지의 시간이었다. 낡은 책상의 공기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어낸 아버지의 어깨에 묻어있던 시대의 냄새와 닮아 있었다. 하루 한 끼를 배불리 먹으면 그저 행복했던, 삶이 너무 어려워서 행복의 조건이 차라리 단순했던 시절. 나는 영국의 낡은 정원 사무실에서 그 가난하고도 묵직했던 한국의 1950년대를 만지고 있었다.


이어서 귓가를 때리는 타자기 소리는 언니의 시간으로 나를 데려갔다. 상고에 다니던 언니는 방과 후면 타자 학원에 다녔다. 좁은 집 안에 울려 퍼지던 언니의 딸깍딸깍 소리. 그것은 팍팍한 현실을 묵묵히 견디며 내일을 준비하던, 성실하고 애틋한 미래의 소리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그리움이 당도한 종착지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어릴 적 목욕을 하다가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면, 나는 수건이 어디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엄마! 엄마!" 하고 소리쳐 불렀다. 부르면 달려오는 엄마의 다급한 발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 발소리는 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안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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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인생의 절반을 살았고, 내 솥단지가 걸린 이곳 영국이 나의 집이라고 말하면서도, 이따금 이유 없는 눈물이 핑 도는 날이 있다. 고향이란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이토록 강렬한 '감각'이자 '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 주던 절대적인 사랑의 기억이 내 발을 이 낯선 땅에 단단히 딛고 서게 해 준다.


나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우산을 쓴 사람들은 여전히 빗속을 걷고 있었고, 나는 홀로 시간의 방 안에 고요히 서 있었다. 그때 알았다. 여행은 물리적인 거리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내가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시간을 만나러 가는 일이라는 것을. 초록의 위로가 필요해 떠나온 반나절의 여행은, 그렇게 수십 년 전의 고향을 흔들어 깨워 내게 건네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완벽한 여행이라 부른다. 멀리 가지 않고도, 나는 아주 멀고도 깊은 곳에 다녀왔다. 지도 밖으로, 내 가장 따뜻한 기억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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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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