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더 쉽게 축하하고, 덜 함께 하게 되었다

by 양수경


얼마 전, 친구 딸 J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가 J를 처음 만난 건 북아일랜드에서 런던으로 이사 온 해였다. Year 7, 아직은 어린 티가 남아 있던 소녀. 그 아이가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한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나이 들어가는 기쁨 중 하나다. 그 아이를 떠올리면 몇 개의 장면이 겹쳐 지나간다. 처음엔 세상을 다 아는 듯하다가도 어느 날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돌아오던 시간들, 전공을 바꾸겠다며 진지하게 미래를 이야기하다가도 며칠 뒤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던 날들, 그리고 결국 자기 길을 찾아가던 과정들. 그 모든 순간들이 서툴고도 생생해서, 오히려 더 그 아이답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기까지. 어느 순간 그녀는, 내 삶의 한 페이지 속에 뭉클하게 자리 잡은 풍경이 되어 있었다.




영국에는 한국처럼 결혼식만 전문으로 치러내는 거대한 '웨딩홀' 건물이 따로 없다. 마을의 소박한 커뮤니티 홀이나 아늑한 정원이 있는 시골 농가, 혹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등 두 사람이 꿈꾸는 콘셉트에 맞춰 공간을 직접 빌리고 꾸민다. 요즘 한국의 예비부부들이 예식장 예약 전쟁에 밀려 결혼 날짜마저 미룬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정해진 틀 없이 원하는 공간을 파티장으로 둔갑시키는 이들의 유연함이 새삼 부럽게 느껴진다.


J의 결혼식 역시 로햄프턴 대학 내의 고풍스러운 한 홀을 빌려 열렸다.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는 친구 부부와 함께 티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눴다. 조용한 서약으로 시작된 예식에서 신랑과 신부의 부모는 자녀의 어린 시절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다. 신랑이 교통사고로 다리에 철심을 박고 아픔을 견뎌낸 시간, 신부가 어린 시절 한국의 할아버지 집 앞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던 이야기와 영국에 처음 와 적응하던 낯선 시간들이 차분히 흘러나왔다.




이곳의 결혼식은 찰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하객들과 함께 찬찬히 넘겨보는 자리였다. 예식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함께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햇빛 아래 서 있다가, 밤이 되자 음악이 흐르고 자연스럽게 춤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와인잔을 들고 대화 상대를 바꾸어 가며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나는 신랑 측 하객 중 내 대학 동창과 같은 과 친구였다는 한 금융인을 만났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며 브렉시트 이후의 변화와 중동 정세가 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식 한가운데서 처음 만난 사람과 묵직한 시사 토론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시간에 쫓기지 않는 넉넉한 여유가 그곳에 있었다. 그날의 결혼식은 바쁜 '시간'이 아니라 깊은 '관계'로 채워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몇 년 전 한국에서 참석했던 결혼식 풍경이 겹쳐 올랐다. 체감 시간은 30분 남짓. 예식장 입구에 들어서면 꽃보다 먼저 사람의 물결이 덮쳐온다. 검은 정장과 단정한 원피스들이 복도에 빽빽하게 서 있고, 누군가는 다급히 봉투를 꺼내 이름을 적고, 누군가는 식권을 받아 손에 쥔다. 한복을 입고 입구에 선 부모님과 짧은 인사를 나눈 뒤에는 늘 시간을 확인하는 눈빛이 따라붙는다.


“신랑, 신부 입장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맞춰 박수가 터지지만, 감정의 동요보다는 타이밍이 먼저다. 시선은 무대를 향하지만, 그 순간은 마음에 남기보다 스마트폰의 렌즈를 통해 '기록'으로 남는다. 축가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한다. 결혼식은 끝나지 않았지만 뷔페 접시에 음식을 담는 손들은 이미 분주하고, 우연히 마주친 지인들과의 대화는 짧게 이어지다 금세 끊긴다. 한국의 결혼식은 축하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효율적으로 시간을 나누어 쓰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같았다.




두 나라의 축하 방식은 식장 밖에서도 확연히 다르다. 영국에서는 결혼식 전, 하객들이 집에서 노트북을 열어 웨딩 레지스트리(선물 리스트)를 내려다본다. 토스터, 와인잔, 작은 램프 하나까지. 그 물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신혼집을 상상하게 된다. 나 역시 친구들과 돈을 모아 거실 소파 옆에 둘 램프를 골랐다. 선물을 고르는 시간은 곧 그 사람의 취향과 삶을 다정하게 떠올리는 시간과 겹친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는 남지 않지만, 내가 고른 마음의 형태는 그들의 집 어딘가에 오래도록 남는다.


반면, 한국에서 결혼은 오랫동안 '두 사람'이 아니라 '두 가족'의 결합이었다. 그래서 축의금은 단순한 축하의 의미를 넘어, 촘촘한 관계 속에서 오가는 사회적 장부가 되었다.


그리고 이 견고한 구조는 최근 또 한 번 차갑게 진화하고 있다. 요즘은 종이 청첩장 대신 카카오톡으로 링크 하나가 날아온다. 예쁜 사진 아래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적혀 있는 계좌번호. 참석 여부를 묻기보다 송금 방식까지 완벽하게 세팅된 초대장이다. 그 편리함 사이로 묘하고 씁쓸한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빠르고 쉽게 축하를 건넬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덜 함께'하게 되었다. 모바일 청첩장은 축하의 문턱을 낮춘 것이 아니라, '수금의 방식'을 가장 편리하게 진화시켰을 뿐이다.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경건한 의식이, 어느새 바코드와 계좌번호로 오가는 차가운 온라인 청구서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축하는 1초 만에 송금되고, 관계는 점점 더 정교한 계산 속에 머문다.


그렇다고 영국의 철저한 당사자 중심 문화가 완벽한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J의 결혼식 하객은 60명 남짓이었고, 부모의 손님으로 허락된 자리는 극소수였다. 철저히 신랑 신부가 원하는 사람들만 초대받는 이곳의 문화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개인화되어 '그들만의 프라이빗한 파티'로 좁혀지기도 한다. 부모 세대의 인연이나 넓은 의미의 공동체가 두 사람의 결합을 지켜보고 품어주던 전통적인 의미가 휘발되고, 개인주의의 결정판으로 남게 되는 씁쓸함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결혼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효율적으로 돈을 거두어들이는 비즈니스도, 철저히 선택된 몇몇만 모여 즐기는 배타적인 파티도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삶의 궤적을 합치는 그 두렵고도 경이로운 순간. 그 연약한 시작을 향해 나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며 곁에 서서 증언해 주는 일. 그것이 결혼식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결혼'이라는 같은 이름의 잔치를 치르면서도 본질을 잃어버린 채, 한쪽은 지나치게 무거운 계산서로,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가벼운 파티로 관계를 남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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