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왜 그토록 옛것에 집착할까?
최근 브런치에서 두 편의 글을 연달아 읽었다. 한 편은 작가가 머물렀던 민박집이 무려 8대째 내려온 땅에 지어졌다는 놀라운 기록이었고, 다른 한 편은 LA 한인타운에서 오래 자리를 지켰던 알라딘 서점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대한 깊은 상실감의 기록이었다.
지켜낸 공간과 사라진 공간. 그 두 편의 글을 읽고 나니 문득 깊은 궁금증이 일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오래된 것을 좋아하고, 익숙한 것이 사라질 때 슬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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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런던에 사는 내 영국인 친구는 주말마다 한 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외곽으로 나간다. 할아버지 때부터 다녔던 이발관에 가서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옷차림처럼, 계절처럼, 유행처럼 머리 스타일도 편하게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굳이 그 먼 거리를 감수하면서까지 낡은 이발관을 고집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그런 풍경이 드물지 않다. 같은 빵집, 같은 펍, 같은 교회를 수십 년간 다니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다녔던 낡은 학교를 자녀의 학교로 기꺼이 다시 선택한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 한국에서 온 내게 가장 큰 당혹감을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닌 '문'이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버튼식 도어록 대신, 무거운 열쇠를 구멍에 깊숙이 넣고 철컥 소리가 날 때까지 돌려야만 열리는 묵직한 문.
어느 날, 실수로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나온 채 문이 닫혀버렸다. 꼼짝없이 문밖에 갇힌 나는 결국 열쇠공을 불러야 했고, 문을 여는 대가로 무려 20만 원이 넘는 꽤 비싼 값을 치르고야 다시 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장 당혹스러운 건 그 실수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그 뒤로도 몇 차례나 더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었다면 버튼 하나, 혹은 지문 인식 한 번으로 1초 만에 끝났을 일이었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세면대에는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여전히 나뉘어 있었다.(물론 요즘은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말이다.)
도대체 왜, 이토록 불편한 방식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걸까.
그 힌트를 런던 타워(Tower of London)에서 찾은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무려 7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밤 9시 52분이 되면 문을 잠그는 의식(Ceremony of the Keys)이 거행된다. 어둠 속에서 랜턴을 든 수문장이 다가오면 초병이 어김없이 외친다.
"Halt, who comes there? (정지, 누구냐?)"
"The keys. (열쇠다.)"
짧은 문답이 끝나면 육중한 문이 닫힌다. 첨단 보안 시스템이 발달한 21세기 런던 한복판에서, 이들은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직접 열쇠를 돌리며 700년 전의 시간을 매일 밤 반복한다.
최근 푹 빠져 읽고 있는 책, 헬렌 한프의 <84, Charing Cross Road> (한국어판: 84번가의 연인) 역시 이 변하지 않는 지속의 감각과 닿아 있다. 뉴욕에 살던 무명작가 헬렌은 우연히 런던의 헌책방 '마크스 서점'을 알게 되어 절판된 영국 책을 구해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1949년, 2차 세계대전의 상흔으로 식량 배급제가 실시되던 혹독한 시절이었다. 헬렌은 런던의 서점 직원 프랭크와 동료들에게 구하기 힘든 햄과 달걀가루 등 식료품을 소포로 보낸다. 이 작은 호의로 시작된 편지 교환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이어진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이들은 수십 년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서점을 매개로 완벽한 가족이 되었다. 훗날 프랭크가 세상을 떠나고 서점이 문을 닫게 된 후에야, 헬렌은 마침내 런던을 방문해 텅 빈 서점 앞에 선다.
그녀가 사랑했던 것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즉 변하지 않는 관계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사실 영국이 이토록 옛것을 지키려 애쓰는 심리적 기저에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겪어낸 '급격한 변화'의 충격이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기계음과 함께 시작된 산업혁명은 사람들의 일상과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를 빠르게 집어삼켰다. 그 파괴적인 속도전 속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과거의 낭만과 잃어버린 전통을 더 간절히 찾고 지키려 했다.
영국의 대문호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이러한 영국인들의 심리를 완벽하게 대변한다. 주인공 호빗들이 모여 사는 마을 ‘샤이어(The Shire)’는 산업화의 때가 묻지 않은, 오래된 전통과 평화로운 일상이 반복되는 영국의 낭만적 농촌을 상징한다.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절대반지'가 무자비한 탐욕과 급격한 산업화의 파괴력을 뜻한다면, 그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은 결국 '소박하고 오래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위대한 투쟁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영국의 풍경은 눈부시게 빠른 경제 성장을 겪으며 '새로운 것은 무조건 더 좋은 것'이라는 명제를 체득해 온 한국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허름한 구도심은 세련된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되어야 하고, 식당의 간판은 유행에 맞춰 빠르게 교체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는 역동적이고 눈부신 효율을 얻었지만, 그 속도전 속에서 내가 속한 공간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불안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방인의 눈에 영국의 오래된 펍과 낡은 열쇠, 그리고 구불구불한 좁은 길은 때로 답답하리만치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십 년간 같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700년 전 방식 그대로 문을 잠그는 이들의 삶의 기저에는 하나의 단단한 확신이 깔려 있다.
"이곳은, 그리고 내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 예측 가능성은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엄청난 심리적 안전 기지(Secure base)가 되어준다. 내가 어린 시절 걷던 골목이, 부모님이 기도하던 교회가, 할아버지가 다니던 이발관이 내일도 모레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굳건한 안도감.
어쩌면 열쇠공에게 지불했던 그 비싼 20만 원은, 단순히 문을 여는 비용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변해버리는 세상으로부터 나의 속도를 지켜내기 위해 치러야 할 '안정감의 유지비'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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