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독일의 답변

Dresden의 SisterChurch

by I am YS

Bodo 교수의 권유로 돌아오는 기차 5시간을 흘러와, 사방으로 예술이 흘러나오는 Dresden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시 한가운데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구광장을 끼고 호텔을 잡은 후 여러 곳을 기웃거려본다. 사방이 돌로 축조된 건물 투성이라 자꾸 보니 분간이 더 안되기도(지붕에 얹은 동상들도 죄다 비슷해서). 강을 끼고 자리한 유적 지대 한가운데 깨끗한 호텔들이 흩어져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나쁘진 않다. 돌바닥을 오래 걸어 발목이 새끈거리는 것 빼곤. 전에 다른 일로 출장차 잠시 들렀을 때 같이 온 동료가 추천한 감자수프와 local 맥주 한잔으로 저녁을 열고 난 후 주요리를 뭘 먹을까 탐색 중이다.


서독이 통일 후 일부 돈을 쏟아부는 곳 중 하나가 문화유적들이다. 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독이 방치해둔 많은 문화유적들을 CAD와 빛바랜 사진들을 통해 복구해냈다.


광장 한가운데 보이는 '자매교회'는 2차 대전 때 그 잔인했던 융단폭격으로 벽돌 몇 층만 남기고 잿더미로 바뀌었고, 그 돌들을 그대로 모아서 새 돌들과 함께 Computer로 짜 맞춘 게 지금 서있는 교회건물이다.

아래쪽 돌들은 여전히 군데군데 그을러 있는데, 그 돌들이 original이고 나머지 하얗게 깨끗한 부분이 새로 추가된 부분이다.

AF1QipNnaeeFqRPL6Fx_LwKSAIBJU36qKT7MbRttPnxX=s680-w680-h510 Martin Luther가 교회 앞에서 호소하고있다

이 동네를 재건하는 내내 동독 주민들과 서독 주민들은 정부를 비판해 데었고(어디든 똑같다), 완공 후의 이득은 고스란히 그들 몫이다(관광으로 버는 사람들과 관광 방문하는 사람들로). 단지 그 10년 동안 꿋꿋이 작업한 이들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도시 군데군데 폐허로 보이는 저택들이 드문드문 나타나는데,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어서 original 주인을 기다리고 있단다(원래는 유대인이 살다 쫓겨나간 후 동독 주민이 살다 다시 서독 주민이 매입하는 과정에서 그 집이 원래 유대인 소유였다는 게 확인이 돼서 원주인을 찾는 과정에 있단다(이과정을 언젠가는 우리도 거치려나).


강을 끼고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어 있는 게 낯설지 않다. 전에 출장차 들러 눈이 비처럼 쏟아지는 다리를 건너 맥주 한잔 마셔야겠다는 일념으로 떨며 걷던 기억이 새삼 춥다.


그 추웠던 겨울에 마시던 맥주(Hefeweissen이었던가)는 왜 그리 푸근하고 시원했던지 각기 제나라 음식에 같이 나오는 술과 음식은 이상하리 만치 잘어울린다는 기억이 소시지를 연신 썰며 나온다.


광장 구석에 자리한 Dresden Phil 전용의 concert Hall이 이상하리 만치 낯설다. 주위 건축양식과 사뭇 동떨어져 보이는 게 동독 시절에 지었던 모던양식으로 보인다.


Hall 안에는 새 단장이 한창이지만 건물 전반적인 모양과 구조는 유지하기로 한 모양이다. 통일 후의 여러 과제 중 하나가 아마 각 부분이 그동안 지녀왔던 반세기 너머의 유산을 어느 선 까지 너그러이 놔둘 수 있는가가 아닐까? 둘째 날에도 보는 구소련식 건물 양식이 차차 눈에 익는다.

Altmarkt_dresden_kulturpalast2.JPG 주위의 전형적인 독일식 건물들과는 다른 양식의 모던함이 파격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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