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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Sep 13. 2024

너의 사춘기를 증오한다 2

학교 종소리와 블랙코미디

따라라라 따라라라~~

어김없이 50분이 되면 종은 울린다.

학교 종소리가 저렇게 컸던가..

저렇게 정확했던가..

저렇게.. 슬펐던가.


고공행진하던 집값은 코로나가 거의 끝나가자

무섭게 내려가기 시작했고

전세보증금을 내주지 못할까봐 겁이 난 주인아주머니는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기한이 두달이나 남았음에도 나가라고 난리였다.

그렇게 쫓기듯이 급하게 집을 알아보니

여고 앞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에 전세매물이

대거 남아있어서 우리 이사 날짜에 맞는 집을

골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새집을 싸게 전세로 들어갈 수 있다니!

급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이사날에 맞출 수 있다니!

거기다 여러 집 중에서 고를 수 있다니!


세상 즐거운 마음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걱정했던 아이의 고등학교 배정도

바로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만 타면

몇정거장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발표가 났다.


모든 일들이 신이 나를 위해 예비해둔 것처럼

착착착 진행되었다.

이사짐을 싸고 풀고 청소를 신경쓰고..

그 모든 일들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새집은 참 좋았고..

예민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는

고등학교의 새로운 생활에  흠뻑 빠져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소위 학군지라는 곳에서

평범한 엄마들을 따라하며 지낼 수 있는 건가.

내게도 대입이라는 큰 목적을 앞에두고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를 격려하고 독려하고 지지하며 때로는 투덜대며 지내면 되는 건가.

나도 드디어 평범한 엄마가 되어 보는 건가!!

얼떨떨해서 잘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영화처럼 3월, 4월, 5월, 6월…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그 얼떨떨한 감정이 사라지기도 전에..

내가 팬트리의 짐들을 다시 한번 꺼내서 정리하기도 전에..

내가 내 불행을 눈치채기도 전에..


아이는 점점 결석일수가 늘어나더니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

.

.

지금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등교하는 아침시간에 잠을 잔다.

그리고 우리는 아침마다 학교 종소리를 듣는다. 50분 마다 그리고 쉬는 시간10분 마다 …


누군가 그랬다.

아이가 학교를 자퇴한 뒤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아이들만 봐도 눈물이 났다고..


나는 학교 종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차오른다.

파블로브의 개처럼 종소리만 들으면

눈에 눈물이 맺혀서 자동으로 떨어진다..


오늘은 창문을 내다보니 아직 7시 20분인데도 운동장을 가로질러 부지런히 학교를 걸어가는 여학생 둘이 보인다.

참 기특하다.

그냥 눈물이 난다.

학교를 아침부터 열심히 등교하는 아이들의 뒷모습만 봐도 눈물이 난다.

뭘 먹여 키워서 아이들이 저렇게 열심히 학교를 가는 걸까.

학교만 간다면 꼴찌 성적표를 받아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제발 눈떠서 학교만 가는 규칙적인 생활만 한다면

나는 지금 이 절망에서 건져질 것 같은데…


아이는..

밤새 유튜브를 보고 새벽 네다섯시에나

잠든 것 같다.

이따 늦은 오후에나 일어나서 밥 달라고 하겠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뷰는 참 좋다.

그전집은 베란다 너머 아파트 때문에

창문을 열고 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지금은 창문을 열면 탁트인 운동장에

산을 등지고 서있는 아담한 학교가 보인다.


눈이 시원하고 경치가 참 좋다.

그 경치를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니..

학교 종소리를 듣고

눈물이 흘러 얼굴까지 시원해진다.


학교 바로 앞에서 살면서

학교를 가장 멀리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또 하루가 시작된다.


슬프고도 황당한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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