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져 간다..
나는 일상을 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충격으로 쉬고 있던
집안일도 열심히 한다.
둘째 아이 공부도 열심히 봐주고
식사도 간식도 열심히 준비한다.
그러면
집안에 좀도둑이 든 것처럼
잠시 나갔다오면
반찬이 줄어있고
간식이 비어져 있고
개수대에 그릇이 더 들어가 있다.
오늘은 아침에 둘째아이 유부초밥을 싸면서
반찬통에 1인분 정도 더 싸놓았다.
저녁엔 반찬들을 좀더 많이 해서
꺼내기 좋도록
냉장고 앞줄에 배열해 놓는다.
먹어도 되는 간식들을
식탁위에 무심해보이게 올려 놓기도 한다.
그냥
생각 안하려 한다.
닫힌 방문을 억지로 열지 않고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길냥이 밥을 놓아주듯
이곳저곳에
먹을 것들을 놓아 둔다.
난 어미니까..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으로 엮여 있으니..
오늘은 둘째아이 초등학교 발표회에 참석했다.
교실뒤에 서서
부푼 꿈들을 안고 자식을 향해
애정을 보내는 부모들을 본다..
좋을 때지..
둘째 아이에게 미안하다.
벌써 할머니 마음이 되어버린 어미라서..
최대한 마음을 다잡고 정신차려 본다.
때마침 전학왔다고 둘째 아이를 따돌렸던
여왕벌 같은 여자아이가 보인다.
최대한 무서운 눈으로 쳐다본다.
괴롭히지 마라.. 괴롭히지 마라..
오빠의 무서운 사춘기로
어린시절 내내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둘째를 이렇게라도 응원하고 싶다.
교실 수업을 보고나니
강당에 가서 합창단과 국악부 공연을 보고 가라 한다.
조용히 강당 뒷줄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나왔다.
거기에 있는 대부분의 학부모가
합창단과 국악부 부모였다.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고
아이의 공연에 설레어 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워서..
너무 참담해서 그냥 나왔다.
집에 오면
닫힌 방문안에
더벅머리같이 머리를 부시시하고
밤새 폰질을 하며 놀다 잠이든
좀도둑 같은 아들이 있다..
학교를 나오니
구찌와 샤넬과 프라다 백들을 들고
삼삼오오 식당과 카페로 수다떨며
엄마들이 오간다.
나도 이렇게 마음이 참담해서
어울리지 못하는데..
둘째도 그래서
학교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
둘째에게 미안하다.
억지로 무뎌지고 일상을 사는 날들이다.
시간은 흐르고..
일상은 흐른다.
이 지옥같은 시간에 무뎌져가는
나도
아이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