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쌓아온 시간은 왜 이렇게 가볍게 다뤄질까?
퇴사를 결심한 날, 나는 무엇보다 ‘잘 마무리하고 떠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감정적으로 치닫지 않고 스스로 떳떳한 이별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며 30일보다도 5일을 더 남겨두었다.
내 계획은 분명했다. 예고 기간 동안 실무를 정리하고, 남은 일주일은 인수인계에 집중하는 것.
하지만 회사는 60일 뒤 퇴사를 요구했다. 입장 차이는 분명했지만, 나는 갈등을 피하고 싶었다.
“조정의 여지를 남기자”는 말로 일단 수긍했고, 그렇게 계획과 결심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퇴사일이 확정되기도 전에 “일단 인수인계부터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거취조차 결정되지 않은 채 나는 갑자기 ‘인수인계 담당자’로 전환됐다.
그리고 문제는 그 인수인계의 대상자였다.
다른 분야에선 뛰어났을지 모르지만 내 자리에서 필요한 전문성은 1도 없었다.
그럼에도 대표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강조했다.
나는 그 ‘믿음’이 경력이 아니라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나는 그가 정규직 전환을 조건으로 본인의 희망 연봉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연봉이 이미 나보다 높다는 사실까지 함께.
과거에 그 인물이 연봉 조건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보류했던 일도 있었기에 더 씁쓸했다.
결국 나는 10년 동안 쌓아온 경험과 경력이 단지 “스터디하면 된다”는 말 한마디로 대체되는 현실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인수인계자가 아니었다. 실무 투입을 위한 교육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실무에 직접 동석하라는 요청까지 내려왔다.
나는 인수인계와 교육은 명확히 다른 일이라고 믿는다.
퇴사자는 그동안의 구조와 흐름 판단 기준을 정리해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이상은, 그 조직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실무도, 인수인계도, 교육도 하고 있다.
퇴사일도 정해지지 않은 채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인수인계하고 있다.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쌓아온 시간과 감각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겐 그저 가르쳐주면 되는 것이라 여겨지는 순간,
나는 내 존재의 가치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퇴사를 결심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이 조직에 감정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나를 소모하지 않기로 했다.
진짜 마지막 과제는 '잘 넘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