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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아늑한 내 마음의 방을 청소하기


" 미안하지만 저는 쓰레기통이 아니에요."




내뱉고 싶은 말이지만 늘 이내 하지 못한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각자의 크고 작은 아픔들이 있다.

아픔을 나는 쓰레기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혹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픈 쓰레기들이 있다. 어디에 버려야할지

어떻게 치워야 할지 .. 그리고 쓰레기와 엉켜진 추억들은 어떻게 정리를 해나가야 할 지 잘 몰라서 허우적 거리며 아파하는 어른들이 참 많다. 나도 그런 어른중에 한명이다.


나는 사실 내 삶은 거저 받은 새 삶이라고 생각한다.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건짐 받아서 사실상 이미 고인과

다름 없었는데, 이렇게 가쁜 숨이지만 호흡도 하고 배고픔도 느끼고 부질없는 삶의 계획도 종종 하며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놓으려 했던 삶의 끈을 그래도 소망있게 붙들고 살게된 거저 받은 은혜라고 할 까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해야만 할것 같은 의무감이 내게는 깊숙히 존재한다.


어딘가에 있을 나와 같은 한 호흡이 쓰레기를 자신인양 끌어안고 살까봐 늘 마음에 뭉클함은 간직하며 산다.

그래서인지 유독 나에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이냥 저냥 속상한 이야기 아픈 이야기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주 쏟아내곤한다.



청소는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면 새로운 관점에서  정리하는 방법이라던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상의도 해볼수 있고 여러가지 도움을 받을수가 있다. 무엇보다 시간과 노동력의 부분에서 굉장히 합리적으로 청소를 마칠수가 있다.  혼자서든 누군가 함께든 양측모두 "청소"를 한다는 면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수 있는 일이기에 좋은것이다.   지저분해진 내 방을 보고 울고만 있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각종 오물로 더러워진 방을 보고 몇가지 생각해 볼수 있다.


1. 지금 청소를 할 것인가

2. 어디서부터 청소를 어떻게 할것인가

3. 혼자 할 것인가 누군가와 함께 할것인가

4. 버릴것인가 그대로 둘것인가


4가지 이하이거나 이상이겠다. 당연히 청소를 한다는 전제하에...


그런데 종종 쓰레기를 보고 울고 불고 하는 사람들을 본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쓰레기를 꼭 끌어안고 울기만 한다.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에선 구역질이 나는 오물이 흐르게 되고 썩어서

집안전체에 퍼지는 악한 균으로 바닥이든 공기든 사방 침투하게 된다. 작은 쓰레기 하나가 한 사람의 모든것을

망치고 있는 경우를 왕왕 보곤한다.


가슴이 아프다.  한 두번 그 오물의 어떠함에 대하여 듣게되면 그 다음엔  물어보게 된다.


" 자 , 그러면 이제 그 악취나는 쓰레기를 버리시겠어요?"


누군가는 화들짝 놀라며  이내 또 아파하며 말한다.

" 나는 쓰레기에요..."

혹은 말 한마디 없이 다른 누군가를 또 찾아서 그 소중한 쓰레기에 대해 열거하곤 한다.


우리는 쓰레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사실 모두 투명하고 단단한 보석의 입자들이다.

이세상은 곳곳에 그러한 보석들이 숨겨져 살고 있는 진흙밭이다.  살다보면 당연히 묻을수 있는 오물들

그 오물들이 천지에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아직 세공되지 않은 보석이 될 귀한 원석들이다.

누군가에게 발견되어져 아름답게 세공되어 주인을 찾아갈 날을 기다리는 값어치 있는 보석이다.

문제는 그 원석들이 자신도 오물인줄 착각하며 산다는것이다.  


나와 쓰레기를 분리하는 이성을 찾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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