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y essay

피고인 VS 보이스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드라마 '피고인'은 공중파에서 방영되고 있고, '보이스'는 케이블 방송사에서 방영을 마친 드라마이다. 이 두 드라마와 같은 장르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몇가지를 짚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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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된 자아를 가진 악인


드라마가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악인의 악성이 고도로 높게 설정되어야 한다. 피고인에서는 재벌 2세 '차민호', 보이스에서는 재벌2세 '모태구'로 그려지고 있다. 핸섬하고 지적이며 많은 부를 보유하고 있다. 외견상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악인의 공통적 특징은 결핍이다. 차민호는 아버지로부터의 사랑이 결핍되어 있고, 모태구 또한, 아버지가 살인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사이코패스가 된다. 둘다 제대로 된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


결핍현상은 인내심 부족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거나 원하는 것이 있거나 자신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제거하고 손에 거머쥐려 한다. 올바로 된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가난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그리 큰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 법과 제도를 무시한 악인의 횡포


드라마의 연출상 악인은 최대한 잔인하고 흉폭한 범행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악인에게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는 것 따위는 무가치한 일이다.


악인은 법과 제도, 그리고 절차적 요건 등을 무시하고 그 위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법과 규칙을 지키는 것은 능력없는 소시민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 수족처럼 부리는 능력있는 하인의 존재


악인에게는 기민하고 능력있는 수족이 있다. 온갖 허드렛일, 뒤치닥꺼리를 하면서 악인에게 핍박을 받아도 충성심에 변함이 없는 그런 존재가 항상 있다.


악인과 수족은 모종의 계약이나 사연을 통해서 아주 단단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대부분 수족의 입장에서는 악인으로부터 얻을 것이 있고, 악인은 수족의 약점이나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 선한 역할을 하느라 바쁜 일정상 수족에게 자신의 악한 면을 대리하여 시킨다.

# 부패한 공무원


악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악인의 요구사항을 친절하게 수행하는 공무원이 등장한다. 경찰이나 검찰, 판사 등 주로 사법기관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악인을 쫓는 말단 공무원에 불과한 주인공의 업무를 방해한다. 종국에는 이들의 혐의가 드러나 구속이 되지만,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악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


올라갈 때는 한 평생, 내려올 때는 한순간


# 악인에게 가시같은 주인공


주인공은, 악인이 가진 인적, 물적 시스템을 동원하더라도 제거가 되지 않는 존재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돈키호테'적 저돌성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다들 안된다고 만류를 하지만, 주인공 혼자 된다고 생각한다.


악인은 이런 주인공에게 일종의 호감을 가진다. 쉽게 제거해 버리면 그만인데, 시의적절하게 실마리를 제공하고 일종의 게임을 하고 싶어한다. 초반부터 종반 직전까지는 악인이 연승을 하지만, 막판에 뒤집힌다.

드라마의 진행상 주인공을 쉽게 소멸시켜 버릴 수 없는 한계도 있을 것이다.


# 소시민들의 승리


악인의 몰락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것을 위해 과장되고 막장인 줄 알면서도 다음회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갈증을 최대한 참았다가 마시는 한 모금의 물이 최대한 달게 느껴진다.


요즈음은 권선징악, 해피엔딩을 대놓고 시사하는 드라마가 별로 없다. 은근하게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는 결말을 그릴 뿐이다.


악인이 끝까지 처벌되지 않거나 죽지 않는 결말을 그린 드라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현실에서는 더 많음에도 그런 결말은 종결의 의미를 담지 못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악인을 거대한 산처럼 설정해 놓고, 미약하게 주인공을 설정한 이유는, 막판 뒤집기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주인공의 승리는 소시민들의 울분의 표출이고, 소시민들의 억울한 사연에 대한 구제로 대변된다. 악인이 가볍게 무시하는 소시민들이 내재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번호표를 뽑아 순서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규칙을 지키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통과되는 것을 특권이라고 여기지 않고 당연시한다.


국민들이 그러한 특권행사를 용인하는 이유는,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을 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리기만 할 뿐, 부여된 의무를 다 하지 않는다면 그런 특권은 더 이상 부여할 수 없는 문제이다.


두 드라마뿐 아니라 최근에는 정치적 부패, 재벌형 범죄를 그린 영화들이 많았다. 앞으로도 근절되지 않을 문제이지만, 이런 현상 또한 그들을 향한 메세지임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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