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초등학교 시절 월례조회라는 것이 있었다. 월 중 일정한 요일에 전 학년의 학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듣고, 표창할 만한 학생을 대외적으로 표창하는 식순을 진행하는 절차이다.
교장 선생님의 훈시는,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말이 있다.
"아아 마이크 일이삼. 에~~~, 에~~~. 여러분은, ~~~인자~~~~"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는 중에 학생들은 운동장에 열을 맞춰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지러움증을 호소하거나 쓰러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에 대한 처치가 이루어질 뿐, 훈시는 중단되는 일이 없다.
커서 교장 선생님같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 이런 다짐을 한 적이 있다. 커서 보니 교장 선생님이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을 몰라 근거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살던 시절, 우습게 보이는 것들. 커서 하고 싶지 않은 것들. '청소부', '만화방 주인 아저씨', '당구장 사장님', '리어카를 이용한 떡볶이 장수'. 분명 교육을 받을 때, 소위 훌륭하다고 선망하던 것들은, '사'자 붙는 직업, 과학자 등 '자'자가 어감과 품위있는 단어와 어울려지는 직업들을 대단한 것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세상을 겪어 본 지금은, 어느 것 하나 우습게 볼만한, 만만한 직업이나 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이나 직업이든 진지한 고민과 성실함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세상에 의미없거나 훌륭하지 않은 일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한 판의 퍼즐이라면, 우리 각자는 하나의 조각이다. 조각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결코 퍼즐이 완성되지 못 한다. 그만큼 우리 개개인은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
다만, 우리는 힘들어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다른 일을 선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본질은 비슷하다. 힘들다는 것. 개그맨은 웃기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교수는 논문을 쓰지 않는다면, 변호사는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다면, 요리사는 하고 싶을 때 음식을 만들 수만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 최고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말이 있다.
외견상 남들은 쉽고 편하게 돈을 벌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 쉽다. 하지만, 그 내막과 실상이라는 영역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고민의 공통점은 늘 처절하다는 점이다. 하루하루가 힘들기는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고통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치고 내달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에서 의미와 만족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와 일의 의미를 제대로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이 우리의 일과 모습을 우습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자격지심에 불과하다. 결코 그런 어설픈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은, 나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나의 일, 직장을 사랑하고, 의미없지 않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큰 퍼즐의 없어서는 안될 퍼즐의 한조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