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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Jun 09. 2017

핵심만 듣고, 핵심만 말하고 싶다

일상의 변론

요점이나 요지, 핵심만 듣고 답할 수는 없을까. 일을 하다가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집중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한번 소실된 집중력을 종전과 같이 끌어올리는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설득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유에서 핵심의 주변에서 맴도는 대화를 자주 하게 된다. 상대의 감정과 감수성을 자극함으로써 설득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인지 핵심을 두괄식으로 말하는 경우보다 미괄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듣는 사람이 시간적, 정서적 여유가 있다면 말하는 사람의 핵심 이외의 사연을 다 들어줄 용의가 있겠으나, 분주한 상황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들어줄 수는 없는 형편이다. 


"100만원만 빌려 줄 수 있어?", "아니, 나도 돈이 없어", "그래, 어떻게 빌려줄까?"


이런 식의 대화는 단 몇 초만에 결론이 난다. 과연 이렇게 대화를 한다면 인간미가 없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요구할 때, '뜸'이 있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남편의 실직이나 최근에 목돈이 들어가서 현금이 부족한 상황, 자신이 본래 이런 부탁이나 요구를 하는 사람이 아닌데, 부득이 이런 얘기를 꺼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대해서 상당히 긴 설명을 들어야 한다. 


이런 식의 요구나 부탁을 거절할 때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거절의 멘트가 시작된다. 거절하는 사람이 최근 겪고 있는 상황, 돈을 빌려주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지만, 거절할 수 밖에 없는 부득이한 사정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할 수 밖에 없다. 


핵심을 의도적으로 비켜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은 비단 돈 문제만은 아니다. 부탁이나 요구를 하면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듣고 싶지 않은 상황설명을 듣게 되는 상황은 다양한 문제에서 비롯될 수 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인데, 원래 내가 이런
부탁 잘 하지 않는데


부탁이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이유, 그러한 수용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과 효과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빈곤하다. 그저 딱한 사정을 한번 봐 달라는 것 이외에 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고, 이 상황을 거절하는 상대로 하여금 미안함과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상보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문제로 분주하다. 게다가 타인의 문제를 이타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을만큼 여유롭지도 못 하다.  


때문에 가급적 핵심을 말하고, 핵심에 대한 답을 냉엄하게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관계가 소홀해 지기 보다는 심리적 부담이 경감될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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